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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증평의 문화재 (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증평 민속체험관 옆에 야외전시장 옆에 자리한 남하리 석불입니다. 증평읍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曾坪邑 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 증평읍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曾坪邑 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날씨가 덥다. 더운 와중에도 벌판에 모들은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오랫만에 다시 찾은 남하리 석불은 언제나 그렇듯 반가운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민속체험관에서 행사에 앞서 주위를 정리king6113.tistory.com 증평읍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曾坪邑 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 증평읍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曾坪邑 南下里 石造彌勒菩薩立像)남하리(南下里)는 본래 조선시대 청안현(淸安縣) 남면(南面) 지역이다. 『호구총수(戶口總帥)』(정조 13년, 1789) 기록에는 청안현 남면에 27개리가 있었다. 그 중에서..

증평 민속체험관 안에 자리한 증평향토자료관 내부 사진입니다.증평군내에서 발견되었거나 자리하고 있던 역사성이 있는 물건등을 전시하여 놓았습니다.고대의 석기시대 부터 현재의 세대까지 시간 및 시대별로 전시하여 놓았습니다.

모처럼 오랫만에 아내와 함께 증평 남하리에 위치한 증평 민속체험 박물관을 찾아 보았습니다.좌구산 아래 위치한 삼기저수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레길을 걷고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오랫만에 둘이 차도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까운 민속체험박물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저도 향토전시관에 있는 탑을 보기 위해 들렸었지만 다른 유물들은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자세히 살펴 보았답니다.그 중에서 백암리호적대장도 하나에 속합니다. 겉 표지에는 충청북도청안군북면백암리계좌목( 忠淸北道淸安郡北面白巖里契座目)이라고 적혀있고 북면 백암리 호적( 北面白巖里 戶籍)이라고 적혀 있으며 나머지 면에 상세기록이 기술되어 있습니다.노암리 이장댁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합니다. 백암리 호적대장은 현재 증평향토자료..

증평읍 율리 삼기저수지 옆에 자리하고 있는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입니다.얼굴등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수가 없습니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입상으로서 본래는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었는데 1979년 7월에 삼기저수지가 완공되어 수몰되게 되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불상의 높이는 2.1m이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寶冠)을 썼으며 얼굴과 몸체는 양감이 풍부하고, 힘이 넘쳐 보이는 당당한 모습이다. 인상은 풍만하나 목에 삼도(三道)는 없으며,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오른손은 가슴에 얹은 모습이다. 이 수인(手印)은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두려움을 떨쳐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여원시무외인(如願施無畏印)이다. 보관 밑에 굵은 띠가 돌려져 있고 정면에는 둥근 장식이 있으나 띠 안의 문양은..
증평읍 남하3리 염실마을에 있는 초계주씨들의 묘역이 있다.이 묘역은 초계주씨들의 묘역인데 공주판관을 지낸 초계주씨 20세손 주명흠의 묘지도 이곳에 있다.주명흠은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왕이 공주로 피난을 갈 때 어가(御駕)를 호휘하여 정난공신이 되였으며 임금의 특명으로 공주판관을 지냈다. 초계인 주명흠은 서기 1600년 1월 8일에 출생했다. 공은 성장하면서 기력이 남보다 뛰어나 거인 장부가 되어 인조 때 무과에 급제했다. 1624년에 이괄의 난을 만나 임금님을 모시고 공주로 피난간 공로로 정난공신이 되고 공주판관에 특제됐으며, 의주의 방위를 담당하면서 성을 쌓은 공적이 있었다. 1627년에 정묘호란을 만나 마포싸움에 출전하여 전공이 있어, 뒤에 백마산성에서 도원수수성장을 지냈다. 1636년에 병자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