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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회남면 남대문리 (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남대문리는 전통적으로 음력 정월 열나흘 밤 7시에 탑제를 지낸 후 풍 물놀이를 하며 놀다가, 열닷새 자시인 새벽 1시에 산제를 지냈다. 현재는 마을 위 아래 앞 탑과 선돌 수목 형태의 제장에서만 제를 지낸다. 선돌에는 ‘지하대장군(地下 大將軍)’이라고 쓰여 있다. 산제당은 마을 뒷산 중턱에 위치하며, 돌탑은 마을 입구 에 위치한다. 신목으로는 소나무가 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산신에게 제를 올렸으며, 생기와 복덕을 가려 축관 1명, 공양주 1명을 선출하였다. 제관들은 일주일간 근신하였고, 부정이 있으면 다음 날 제를 올렸다. 제상에는 돼지머리, 삼색실과, 주, 포 등이다. 재차와 제수가 약 간씩 차이가 나는데 위탑에서는 돼지머리를 올리고 고축을 하지만, 아래탑에서는 이들을 생략한다. 대신 마지..
남대문리는 회인이나 대전을 거쳐 오는 길도 있지만, 청주에서는 문의~남대문을 잇는 509번 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북으로 문의면 묘암리, 동으로 거교리, 남으로 수몰 되어 사라진 어성리, 서로 샘봉산 너머 청주시 문의면 염티·소전리와 접해 있다. 본래 회인군 서면 지역으로 호점산성의 남문 밖이 되므로 남대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지동, 거구리와 후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대문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거쿠리, 남대문, 만마루가 있으며, 지명으로 가마골, 가마성, 남문, 논골, 느저목골, 돼지골, 뒤견봉, 말바탕, 먹뱅이, 멀티고개, 모악골, 바사리고개, 배나무골, 불무골, 사지뱅이골, 상수리, 성지골, 쇠목골, 안터, 안어성골, 염티골, 용 굴, 우래실, 은정골..
남대문리 앞 논에는 이괄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원래 산에 있던 큰 바위였는데 인조 때 반란을 일으킨 이괄이 죽던 날 뇌성벽력이 일면서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이괄은 선조 때 형조좌랑과 태안군수를 지내고, 1622년 인조반정에 가담해 이듬해 거사에 작전지휘를 맡아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하는데 큰 공은 세운 인물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비슷한 이야기가 강원도 홍천 이괄산성내에 있는 이괄바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회남면 남대문리 양달해효자문 옆에 있는추모비석입니다. 남원양씨휘주몽공파역세존령추모지단위(南原梁氏諱柱夢公派歷世尊靈追募之壇位)라고 정면에 각자 되어 있으며 좌우면으로는 추모단을 세우게 된 내력과 함께 가계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남대문리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서면(西面)의 지역으로서 호점산성의 남문 밖이 되므로 남대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지동(晩旨洞), 거구리(巨九里)와 후곡리(後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남대문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양달해효자문은 원래는 신곡리에 있었으나 1980년 대청댐 담수로 남대문리로 이건하였다. 1905년(광무9) 효자 양달해(梁達海)와 효열부인 그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정문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거구리 입구에 있으며 현판은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양달해지려(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梁 達海之閭) 효부증영인안동김씨지려(孝婦贈令人安東金氏之閭)로 되어 있다. 1905년(광무9)에 명정되어 남편의 아내의 효행을 기리는 정문으로 처음 신곡리에 세웠으나 1980년 대청댐 담수로 ..
회남면 남대문리에 있는 남원인 양달해의 정려비겸 효자비입니다. 남대문리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서면(西面)의 지역으로서 호점산성의 남문 밖이 되므로 남대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지동(晩旨洞), 거구리(巨九里)와 후곡리(後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남대문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거구리에는 남원양씨(南原梁氏)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양경(梁鯨)의 후손 들이 거주하고 있다. 비석에는 증조봉대부동몽교관효자양달해지비증영인효부안동김씨(贈朝奉大夫童蒙敎官孝子梁達海之碑贈令人孝婦安東金氏)라고 적혀있으며 좌우면과 후면에는 양달해의 행적이 적혀있다. 양달해는 남원인으로서 호는 치재(嗤齋)이며 자는 호연(浩然)이다.천성이 인자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어려서 부터 효동으로 이름이 자자했으며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