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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효촌리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자리한 효자 양수척의 비석입니다. 비석은 민가 담장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효자양수척지비(孝子楊水尺之碑)라고 쓰여 있으며 비석의 마모정도가 심합니다.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수척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두 아우와 함께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들을 걱정하다 병이 들어 눕게 되고, 누운 채로 배변하게 되었는데, 이들 3형제는 노모를 모실 수 없으니 고려장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채비를 차렸다. 이 때 충청북도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경대유(慶大有)[경연(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들 3형제를 꾸짖자 양수척 형제는..
[정의] 조선 중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대유(大有), 호는 남계(南溪)이다. 정렬공(貞烈公) 경복흥(慶復興)의 7세손이며 좌랑(佐郞) 경신직(慶臣直)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학식이 고명하고 만고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청원군 남일면 모산(茅山)에서 살았다. 조선 세조 임금 때에 조정(朝廷)에서 불렀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병을 고친 일이 있다. 부모상을 당하여 묘소 앞에 여막(廬幕)을 짓고 6년간 죽을 먹고 소찬을 씹어 예를 다하며, 제사를 받들기를 가례대로 하고 아내와 함께 손수 제사자리를 장만하니, 이웃이 모두 교화되었다. 1478년(성종 9) 조정에서 불러 사재주부(司宰主簿)에 임명하였다. 얼마 후에 이산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