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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후미리 석탑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노래가사처럼... 언제나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소이면 탑산골 후미리 석탑은 오늘도 세월을 깁고서 오는 손님 반겨준다.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tistory.com)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지명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탑상골" 조금은 외떨어진 산골짜기 , 무덤가 한켠에서 외롭게 세월을 깁고 있습니다. 밑에 자리했던 복숭아 과수원은 고목을 모두 베어내고 새로 묘목을 king6113.tistory.com 후미리 석탑 - 디지털음성문화대전 (grandculture.net) 후미리 석탑 - 디지털음성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개설]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일반적으..
지명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탑상골" 조금은 외떨어진 산골짜기 , 무덤가 한켠에서 외롭게 세월을 깁고 있습니다. 밑에 자리했던 복숭아 과수원은 고목을 모두 베어내고 새로 묘목을 심어 놓았습니다. 과수원 온 천지에 냉이가 가득합니다. 같이 동행했던 아내는 탑 구경보다는 봄냄새 가득 품은 냉이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탑을 구경하면서 오늘 저녁은 냉이국을 먹을수 있겠다 하는 별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수원에 묘목을 식재하면서 석탑 주위의 땅도 다듬은 모양입니다.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후미리의 기억들을 담은 와편들이 눈에 띱니다.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후미리사지를 입증하는 몇안되는 지난세월을 대변하는 조각들입니다. 언제나 바라보아도 참 좋은 후미리사지의 석탑입니다. 온전한 몸 아니지만 어디에..
후미리사지 석탑을 보러 갑니다 사진기를 이용해 찍는다는 표현이 아깝습니다. 이제는 가슴속에 가득합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후미리사지 였던 곳을 나는 이 곳을 다시 한번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해하는 세상으로 바꿔보고 싶었나 봅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눈에 보이는 와편. 그 시절일까요? 물어도 대답은 없지만 이곳 저곳 보이는 와편의 흔적은 후미리사지가 나에게 줄수있는 마지막 그 시절의 냄새일겁니다. 행복했습니다. 행복 한조각에 봄의냄새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후미리사지 냄새 집안에 가득합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소이면 대장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지정에 지키는 사람 없으니 아무리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라 하지만 도난우려가 심할것 같습니다. 음성군 차원에서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원래의 고향을 찾아 이건시키는것도 좋을 듯 합니다.언제나 보아도 참 옛님을 찾는 사람으로서 불편한 마음입니다. 후미리석탑과 대장초교석불과의 상관관게인 저만의 생각입니다. http://blog.daum.net/king6113/5591
고향엘 들려 오는 길. 한적한 시골도로를 달리다 기척도 없이 찾아 들어간 후미리 한낮의 뜨거움이 대지를 달구며 초록의 빛을 더해 가는데 개망초꽃들 친구삼아 복숭아밭 지키는 후미리 석탑이 있다. 탑은 텅빈 가슴 열어 보이며 오늘도 지나간 추억을 되집어 가리키며 나에게 손짓을 한다 오고가는길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다고 후미리 석탑 싱긋 미소짓는것 같다. 아련함이다. 한낮의 뜨거움에 가슴이 탄다 뒤돌아 섬은 그리움이다.
후미리사지에는 그리고 석탑 이외에 두부가 결손된 석조여래입상이 있었으나 1978년경에 없어졌다고 하며 초석과 문확석 등이 있다고 한다. 마을 주민(노명식, 67세)의 전언에 의하면 석불은 과수원(후미리 1614-10번지) 한가운데 서 있었으며, 발부분은 묻혀 있었고, 지상에노출된 전체 높이는 1.5m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불상이 큰 돌에 붙어있었다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바위에 양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은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을 무렵 새마을 지도자들이 천렵을 왔다가 경운기에 싣고 갔다고 하며 주민들이 찾으려했으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사지에서 발췌] 한국의 사지의 글에서 새마을지도자들이 천렵을 왔다가 후미리사지에서 불상을 싣고갔다는 대목과 불상이 큰돌에 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