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감물면 이담리계담서원(甘勿面 裡潭里桂潭書院)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감물면 이담리계담서원(甘勿面 裡潭里桂潭書院)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8. 7. 09:51

 

 

 

 

 

 

 

 

 

 

 

 

 

 

 

 

 

 

 

 

 

감물면 이담리 지대미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계담서원(桂潭書院)은 조선조 을사(乙巳) 명신(名臣)인 안명세(安名世) 선생의 춘추정필(春秋正筆) 정신을 기리기 위해

순조 24년(1824년)에 계담사(桂潭祠)로 창건되었습니다

대원군의 서원혁파 정책에 의해 고종때 훼철(毁撤)되었다가 1991년에 계담서원(桂潭書院)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안명세(安名世)에 대하여
1518년(중종 13)∼1548년(명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경응(景應). 부호군 담(燂)의 아들이다.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예문관검열 등을 지냈다.
1545년(인종 1)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많은 현신(賢臣)들을 숙청하자, 자세한 전말을 춘추필법에 따라 직필(直筆)한 시정기(時政記)를 작성하였으며, 사관(史官)으로서의 노고를 인정받아 가자(加資)되기도 하였고, 이듬해에는 승정원주서에 올랐다.
그러나 1548년(명종 3) 이기 등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이른바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찬집할 때, 을사년 당시 그와 함께 사관으로 있었던 한지원(韓智源)이 시정기의 내용을 이기·정순붕에게 밀고함으로써 체포되어 국문을 당하였다.
문제가 된 시정기에는 인종의 장례식 전에 윤임(尹任) 등 3대신을 죽인 것은 국가적인 불행이라는 지적과, 이기 등이 무고한 많은 선비들을 처형한 사실, 그리고 이를 찬반하던 선비들의 명단 등이 담겨 있었다.
그는 국문을 당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이기·정순붕의 죄악을 폭로하였고, 사형에 임해서도 의연한 모습을 남겼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하면서 신원(伸寃)되어 직첩(職牒)을 다시 돌려받았다.[한국역대인물 참조]

 

 

계담서원의 교양대학은 1992년도에 신입생 30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교양인을 배출하였으며, 지역 교양의 전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농한기인 익년 11월부터 익년 4월까지 6개월간 실시되는 교양대학의 강의 내용은 명심보감, 대학, 서예, 동·서양 예절등

도시화와 기계화 문명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깨우침을 가르치고 있어, 교육에 참여하는층이 폭넓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또한 교육내용별로 별도의 전문 강사가 있어, 교육 열기는 일반대학 못지않다.

주위에서 점차 사라지는 충과 효와 예절의 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