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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면 송계리 사자빈신사지석탑 (寒水面 松界里 獅子頻迅寺址石塔 ) 본문
“불제자(佛弟子) 고려국(高麗國) 중주(中州) 월악산(月岳山)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의 동량(棟梁)은 삼가 받듭니다.
대대로 성왕(聖王)께서 항상 만세(萬歲)를 누리시고,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해지고, 법륜(法輪)이 항상 이 지역 저 지방에 전(傳)해지고,
영원히 원적(怨敵)이 소멸된 이후 우연히 사바(娑婆) 세계에 태어나서, 이미 화장미생(花藏迷生)을 알았으니, 곧 정각(正覺)을 깨우칠 것입니다.
삼가 공손히 9층 석탑 1좌(坐)를 조성(造成)하여 영원토록 공양(供養)하고자 합니다. 태평(太平) 2년(1,022, 현종 13) 4월 일에 삼가 기록합니다.”
佛弟子高麗國中州月岳 師子頻迅寺棟梁奉爲
代代聖王恒居萬歲天下大平 法輪常傳此界他方
永消怨敵後愚生婆娑 旣知花藏迷生卽悟正覺
敬造九層石塔一坐永充供養 太平二年四月日謹記
그러면 태평2년(1022년)명에 나타난 영원한 적은 누구일까?
10세기 초 중국의 북부를 통일한 거란족은 나라 이름을 요(遼)라 칭하고 고려로 하여금 송나라와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고려가 이에 불응하자 993년부터 1018년까지 세 번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특히 1010년 두 번째 침입에서는 수도인 개경이 함락되는 등 고려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거란족은 영원한 적이 되었고,
그들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을 탑에까지 담은 것이다.
빈신사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상·하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4층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기단은 글이 새겨져 있어 탑의 조성 경위를 알 수 있으며 위기단은 사자 4마리를 배치하여 탑신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네 모서리에 한마리씩 배치한 사자의 안쪽 공간에 비로자나불상을 모셔 두었다.
앉은 모습의 비로자나불상은 특이하게도 두건을 쓰고 있으며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의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으로 이 밖에도 몇 기의 탑이 더 전해지고 있다.
현재 탑신에는 지붕돌이 4층까지 남아 있는데, 아래기단에 있는 글을 통해 원래는 9층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고려 현종 13년(1022)에 만들어진 이 탑은 연대가 확실하여 각 부의 구조와 양식, 조각수법 등
다른 석탑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중요한 탑이다.
지대석 위에 방형하대(方形下臺)가 놓여 있고, 상부(上部)에 두꺼운 테를 돌려 부연(副椽)을 삼았으며, 그 밑 각면에 3개씩의 안상(眼象)을 새겼다. 안상 안에는 꽃모양을 새겨 고려시대(高麗時代) 수법(手法)을 나타내고 있고 중석(中石)의 4면에는 넓은 우주형(隅柱形)을 새겼으며, 이곳에 79자의 명문(銘文)을 새겨 확실한 연대를 알게 하였다. 특히 상층기단(上層基壇)의 중석(中石)은 가장 특색(特色)있는 부분으로 네 귀에 네 마리의 사자를 앉혀 갑석(甲石)을 받치고, 중심에는 비로자나불좌상(毘盧舍那佛坐像)을 안치한 특수구조로 되어있다. 갑석의 위 네모진 면에는 16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탑신부(塔身部)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는데, 1층탑신은 특별히 크고 2층부터는 급격히 작아졌다.
옥개석은 4층까지 남았는데 평박(平薄)하며, 받침은 3단(段)이다. 또한 추녀의 우각(隅角)은 크게 반전(反轉)하였으며, 낙수면(落水面)의 경사가 완만하다. 원래 9층이던 이탑은 현재 5층 이상은 상실되었으나, 고려시대(高麗時代) 석탑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명문(銘文)에 의해 고려(高麗) 현종(顯宗) 13년(태평(太平) 2년, 1022)에 조성(造成)되었음을 알 수 있는 건실한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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