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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니면 면민만세운동유적비(薪尼面 面民萬歲運動遺蹟碑) 본문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1919년의 만세운동 유적비.
1919년 4월 1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을 후세에 전함과 동시에 시위 주동 인물 8명(단경옥, 이희갑, 이강렴, 손승억, 윤주영, 윤무영, 이강호, 김은배)의 공훈과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충주시에서 1984년 신니면 용원초등학교 정문 앞에 건립하였다. 2003년도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애국지사의 유족으로 구성된 신니면민만세운동유적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재건립하였다.
현대식 건축물로 넓은 기단 위에 장방형의 화강암을 세워 ‘신니면민만세운동유적비’라 음각하고 뒷면에 사다리꼴의 건축물을 세웠다.
비제는 ‘신니면민만세운동유적비’이며 본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자 이에 맞서 우리 백성들이 전국적으로 3·1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면의 신의실과 방추골의 스무 살 안팎인 단경옥(段慶玉), 이희갑(李喜甲), 이강렴(李康濂), 손승억(孫承億), 윤주영(尹周榮), 윤무영(尹務榮), 이강호(李康滈), 김은배(金殷培) 등 여덟 분은 만세를 부르기를 결의하고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만들어, 용원장날인 1919년 4월 1일 장꾼 앞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니 여기에 호응한 군중의 함성이 온 장터에 메아리쳤다. 이 의거는 충주 지방에서의 처음이자 유일한 3·1 만세운동이다. 주동한 여덟 분은 모두 체포되어 혹독한 옥고를 치렀지만 우리나라가 독립된 다음 정부의 포상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이 고장의 순박한 젊은이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침략자에 맞서 독립만세를 외친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충주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인 동시에 유일한 만세운동이라 역사적 의의가 크며, 시위를 주동한 8명 중 손승억은 징역 2년 8월형, 단경옥은 징역 1년형, 이강렴은 징역 8월형, 윤무영, 윤주영, 김은배, 이강호, 이희갑은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중 손승억은 옥중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신니면민 만세운동 유적비는 용원장터가 보이는 곳에 건립되어 애국지사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동시에 신니면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충주디지털문화대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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