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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선정비군(聞慶市 聞慶邑 上草里 善政碑群) 본문

전국방방곡곡/문경(聞慶)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선정비군(聞慶市 聞慶邑 上草里 善政碑群)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4. 10. 07:52

문경새재 선정비군

일련번호

비     명

비형태

재임기간

건비연대

기 타

1

신길원 충렬비

개석有

1590~1592년

1706(숙종)

 

2

 관찰사 김연 거사비

월두형

1704~1706년

1709(숙종)

 

3

현감 이덕령 선정비

말각형

1695~1698년

1709(숙종)

 

4

현감 김희로 선정비

말각형

1713~1716년

1716(숙종)

 

5

현감 최두현 불망비

방형

1704~1706년

1706년 전후

 

6

관찰사 김세호 불망비

개석有

1869-1874년

1870년

 

7

현감 홍로영 불망비

개석有

1824~1827년

1826(순조)

철 비

8

현감 엄사면 거사비

말각형

1802~1806년

1834(순조)

 

9

관찰사 김희순 불망비

월두형

1804~1806년

1836(헌종)

 

10

관찰사 조병현 불망비

월두형

1834~1836년

1836(헌종)

 

11

순찰사 김대근 불망비

월두형

1848~1849년

1851(헌종)

 

12

관찰사 이삼현 불망비

방  형

1865~1868년

1867(고종)

 

13

관찰사 김세균 불망비

말각형

1860~1862년

1870(고종)

 

14

현감 이호숙 불망비

개석有

1871~1874년

1873(고종)

 

15

관찰사 박제인 불망비

월두형

1875~1877년

1877년 전후

 

16

관찰사 이근필 불망비

월두형

 

 

 

17

안동부사 김수근 타루비

개석有

 

1885(고종)

 

18

현감 이인면 선정비 2

 

1888년

1889(고종)

마애비

19

현감 이인면 거사비

 

1888년

1889(고종)

마애비

20

현감 이인면 애휼비

 

1888년

1889(고종)

마애비

21

현감 이인면 선정비 1

월두형

1888년

1890(고종)

 

22

군수 이재하 선정비

월두형

1888년

1888 이후

 

23

관찰사 김명진 불망비

개석有

1888~1890년

1890(고종)

 

24

관찰사 엄세영 송덕비

방  형

1896~1899년

1897(고종)

 

25

상주목사 이익저 불망비

 

 

 

마애비

26

별장 이명의 불망비

월두형

 

 

 

27

오위장 이영직 추사비

말각형

 

 

 

28

김석주 불망비

월두형

 

 

 

 

 

 

 

[김석주영세불망비]

1관문 뒤에 있는 20기의 비석 가운데 제일 아래쪽에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비들이 관찰사나 현감 등 관리들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 비만 오직 관리가 아닌 일반인과 관련된 것이다.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99㎝, 너비 44㎝, 두께 13㎝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80㎝, 세로 50㎝, 높이 2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達城居金錫柱永世不忘碑이고, 비 왼쪽에 ‘己丑八月 日立’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달성에 사는 김석주가 이 지역에 어떤 선행을 베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오위장 이영직추사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의 양쪽 각을 죽인 말각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56㎝, 너비 68㎝, 두께 30㎝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五衛將李公泳稷追思碑’이고, 비문 왼쪽에 ‘辛丑三月 日立’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오위는 조선시대 중앙 군사 조직으로 의흥위, 용양위, 호분위, 충좌위, 충무위를 말한다. 이들은 중앙 뿐 아니라 지방 군사 업무도 각 지역별로 나누어 담당했는데 경상도 지역은 용양위에서 관장하였다.

 

 

 

 

 

[군수이재하 애민선정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56㎝, 너비 68㎝, 두께 30㎝, 대좌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郡守李侯宰夏愛民善政碑’이고, 비문 왼쪽에 ‘辛丑正月 日’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현감 이호숙 불망비]

 

대좌 없이 비신 위에 팔작형의 대좌만 얹혀 있으며, 비신의 하부는 땅에 묻혔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04㎝, 너비 40㎝, 두께 17㎝, 개석은 가로 64㎝, 세로 44㎝, 높이 31㎝ 정도이다.비문의 내용은 ‘縣監李侯鎬肅永世不忘碑’이고, 1873년(고종 10)에 세웠다.

이호숙은 1871년(고종 8)~1874년(고종 11)까지 문경현감을 지냈다.

 

 

 

 

 

 

[현감홍로영 영세불망비]

 

문경새재에 있는 비석 가운데 유일하게 쇠로 만든 철비이다. 개석과 대좌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개석과 비신은 쇠이고 대좌는 돌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56㎝, 너비 68㎝, 두께 30㎝, 대좌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縣監洪侯魯榮永世不忘碑이고, 비문 왼쪽에 ‘崇貞四丙戌 月 日’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26년(순조 25)에 세웠다. 홍로영은 1824년(순조 24)~1827년(순조27)까지 문경현감을 지냈다.

 

 

 

 

[현감 최두현 영세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장방형이고, 비신의 아래쪽 일부가 땅 속에 묻혀 있다. 크기는 높이 152㎝, 너비 54㎝, 두께 22㎝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縣監崔侯斗顯不忘碑’이고, 그 왼쪽에 ‘○○二十一年 丙子四月’, 오른쪽에 ‘身五面立’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최두현은 1704년(숙종 30)~1706년(숙종 32)까지 문경현감을 지냈다.

 

 

 

 

 

[현감 엄사면 거사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의 양쪽 각을 죽인 말각형이고, 대좌는 사용하지 않고 비신의 아래쪽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다. 크기는 높이 128㎝, 너비 54㎝, 두께 22㎝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縣監嚴侯思勉去思碑’이고, 비문 왼쪽에 ‘崇禎紀元後四甲午十二月 日 武校立’가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34년(순조 34)에 세웠다. 엄사면은 1802년(순조 2)~1806년(순조 6)까지 문경현감을 지냈다

 

 

 

 

 

[현감 김희로 청덕선정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의 양쪽 각을 죽인 말각형이고, 대좌는 사용하지 않고 비신의 아래쪽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다. 크기는 높이 115㎝, 너비 52㎝, 두께 22㎝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縣監金公希魯善政碑’이고, 비문 왼쪽에 ‘丙申九月 日立’이 새겨져 있다. 1716년(숙종 42)에 세웠다.

김희로는 1713년(숙종 39)~1716년(숙종 42)까지 문경현감을 지냈다.

 

 

 

 

 

[현감 이덕령 청덕선정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의 각을 죽인 말각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87㎝, 너비 68㎝, 두께 30㎝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49㎝, 세로 78㎝, 높이 26㎝ 정도이다. 대좌 앞면에는 앙련, 윗면에는 복련이 양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縣監李公德齡淸德善政碑’이고, 비문 왼쪽에 ‘己丑十二月 日立’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709년(숙종 35)에 세웠다.

이덕령은 1695년(숙종 21)~ 1698년(숙종 24)까지 문경현감을 지냈다. 가은읍 하괴리에도 불망비가 있다.

 

 

 

 

[관찰사 엄세영 송덕비]

 

 비신의 형태는 네모난 방형이고, 대좌는 상부는 방형, 하부는 원형의 2단인데 상부에는 앙련, 하부에는 복련이 양각되어 있다. 크기는 비신은 높이 134㎝, 너비 45㎝, 두께 20㎝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10㎝, 세로 90㎝, 높이 35㎝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嚴相國世永頌德碑’이고, 비문 왼쪽에 光武元年丁酉十月 日立이 새겨져 있다. 1897년(고종 34)에 세웠다. 엄세영은 1896년(고종 33)~1899년(고종 36)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김명진 불망비]

 

개석과 대좌를 모두 갖추었으나 개석은 조잡한 편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33㎝, 너비 41㎝, 두께 16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76㎝, 세로 52㎝, 높이 14㎝, 개석은 가로 90㎝, 세로 70㎝, 높이 35㎝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兼南營使金相國明鎭永世不忘碑’이고, 비문 왼쪽에 ‘庚寅 月 日’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90년(고종 27)에 세웠다. 김명진은 1888년(고종 25)~1890년(고종 27)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이근필 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15㎝, 너비 40㎝, 두께 15㎝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00㎝, 세로 60㎝, 높이 15㎝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李相國根弼永世不忘碑’이다. 건비연대는 알 수 없다.

 

 

[관찰사 박제인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33㎝, 너비 42㎝, 두께 17㎝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朴相國齊寅不忘碑’이고, 1787년에 세웠다. 박제인은 1875년(고종 12)~1877년(고종 14)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김세균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의 좌․우각을 죽인 말각형(抹角形)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인데, 대좌의 위쪽 네모서리의 각을 죽였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23㎝, 너비 45㎝, 두께 15㎝ 정도이고, 대좌가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대좌의 윗면에는 복련, 옆면에는 앙련이 양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金相國世均遺愛碑’이고, 비문 왼쪽에 ‘庚午八月 日’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70년(고종 7)에 세웠다. 김세균은 1860년(철종 11)~1862년(철종 13)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이삼현 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네모난 방형이고, 대좌는 다듬지 않은 편평한 자연석이다. 크기는 높이 144㎝, 너비 52㎝, 두께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李相國參鉉不忘碑 -監官金萬吉座主林取得-’이고, 비문 왼쪽에 ‘丁卯十二月 日立’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67년(고종 4)에 세웠다. 이삼현은 1865년(고종 2)~1868년(고종 5)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순찰사 김대근 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사용하지 않았다. 비신은 위쪽에 비해 아래쪽이 좁은 편이고, 크기는 높이 144㎝, 너비는 최대 70㎝, 최소 52㎝, 두께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巡察使金相國大根善政碑’이고, 비문 왼쪽에 ‘辛酉 月 日 城內’가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51년(헌종 17)에 세웠다. 김대근은 1848년(헌종 14)~1849년(헌종 15)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조병현 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13㎝, 너비 47㎝, 두께 23㎝ 정도이고, 대좌가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趙相國秉鉉不忘碑’이고, 비문 왼쪽 옆면에 ‘丙申九月 日 城內’가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조병현은 1834년(순조 34)~ 1836년(헌종 2)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김희순 불망비]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13㎝, 너비 48㎝, 두께 22㎝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金相國羲淳不忘碑’이고, 비문 왼쪽 옆면에 ‘丙申九月 日 城內’가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김희순은 1804년(순조 4)~1806년(순조 6)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김세호영세불망비]

 

개석, 비신, 대좌를 모두 갖추었다. 개석은 팔작지붕모양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53㎝, 너비 60㎝, 두께 30㎝, 대좌가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개석이 가로 95㎝, 세로 67㎝, 높이 35㎝ 정도이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金相國世鎬永世不忘碑’이고, 비문의 왼쪽 옆에 ‘庚午八月 日’, 오른쪽 옆에 ‘體念保障 矯捄後獘’가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870년(고종 7)세웠다. 김세호는 1869(고종6)-1874고종10년)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관찰사 김 연 거사비]

 

주흘관 뒤에 있는 20기의 비석 가운데 제일 안쪽에 있다. 비신의 형태는 위쪽을 둥글게 다듬은 월두형(月頭形)이고, 대좌는 네모난 방형(方形)이다. 크기는 비신이 높이 156㎝, 너비 68㎝, 두께 30㎝ 정도이고, 대좌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 정도이다. 대좌의 윗면에는 복련, 옆면에는 앙련이 양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觀察使金公演去思碑’이고, 비의 오른쪽 옆면에 ‘己丑九月 日立’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1709년(숙종 35)에 세웠다. 김연은 1704년(숙종 30)~1706년(숙종 32)까지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를 지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흘문안에 위치한 선정비군이다

관찰사에서 현감에 이르기까지 문경을 거쳐간 지방관리들의 선정비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