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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면 용성리 권국화효자문(三成面 龍城里 權國華 孝子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삼성면 용성리 권국화효자문(三成面 龍城里 權國華 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2. 27. 15:27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권국화의 정려문이다.

권국화에 대한 기록으로는 『순조실록(純祖實錄)』에 1831년(순조 31) “유생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증직되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무신년(1728) 당시 집에 역도가 난입하자 가로막으며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어머니에게는 해를 끼치게 할 수 없다’라고 소리치니 물러났다. 글 읽기를 좋아하여 예학에 힘썼다. 이웃에 사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불손하였는데, 그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마음을 고쳐먹었으며, 여종은 시아버지가 아들 없이 죽자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재가하지 않았다”라고 실려 있다.
『순조실록』,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1831년의 권국화와 정려문 현판에 판각된 1899년 인물이 동일 인물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자료를 찾으면 권국화 효자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전후좌우 네 개 면은 홍살로 막았고, 앞면의 창방 위에 나무로 만든 용을 장식하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효자문은 없고 대문을 만들어 한쪽에는 권국화 효자정려문을 또 한쪽에는 진주정씨열녀정려를 걸어 두었다.

효자문 안쪽에는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권국화지문성상기해오월일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權國華之門聖上己亥五月日命旌)'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향토문화재로 용성1리(성미마을)에 있으며 안동권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자 권국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음성군에는 권국화의 지극한 효성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여러 가지 전해 온다.

이들 중에는 「이양골 이야기」처럼 지명유래담으로 전해 오는 것도 있는데, 각편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조금씩 변용되어 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양골 이야기」에서는 장호원으로 약을 구하러 가는 권국화를 호랑이가 나타나 태워 주었다고 하는데, 「효자 권국화」에서는

말이 태워다 주었다고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권국화 효자비’가 있다.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일대에서 채록하여,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에 수록하였다. 이후 『음성의 구비문학』 등에도 수록되어 전한다.

권국화는 본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 봉양에 지성을 다했다. 한번은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권국화가 아버지의 병이 위중한데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혹시나 병에 쓸 만한 약초가 있을까 하고 뒷산으로 오르던 중이었다.

갑자기 말 한 필이 달려오더니 반갑게 꼬리를 치면서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권국화가 무엇에 홀린 듯 성큼 올라타자, 말은 한걸음에 장호원으로 달려가 어느 약국 앞에 멈춰섰다. 그리하여 권국화는 약국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아버지의 병세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지은 약을 아버지께 드리니 바로 쾌차하였다.

또 한 번은, 한겨울에 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는데, 갑자기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 꽁꽁 언 방죽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잠시 얼음판을 보는 중에 저절로 얼음이 꺼지면서 큼직한 잉어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권국화는 하늘에 감사하며 잉어를 잡아다 아버지께 고아드렸는데, 마치 특효약이라도 되는 듯 저절로 병이 나았다.

그후 노환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권국화는 산소 옆에 묘막을 짓고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그런데 그 삼 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늙은 호랑이가 저녁마다 나타나 권국화를 보호해 주었다고 전한다. 이에 근동 사람들이 하늘도 효자를 알아본 것이라고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효자 권국화」는 말과 잉어, 호랑이 등이 권국화의 효성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효행담의 전형적인 모티프들인 이들 자연물들은 하늘이 효자의 효심에 감복하여 내린 상과 같다.

 

 

 

 

 

 

권국화는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자이다.

권국화는 부모에게 효성이 극진하였는데,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내려온다. 한 번은 아버지의 병에 백약이 무효하여 탄식하다가 뒷산에 올라가니 뜻밖에 말 한 필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말이 꼬리를 치면서 어서 타라는 것 같아서 성큼 올라탔더니, 단숨에 장호원(長湖阮)의 약방 앞에 멈추었다. 말에서 내려 약방에 들어가 병 증세를 말하고 약을 사다 쓰니 병이 나았다 한다.

또 한 번은 아버지의 병환에 생선을 구하였으나 엄동설한이어서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마을 뒤의 못에 이르니 얼음이 스르르 깨지면서 잉어 한 마리가 뛰어나와 잡아다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시묘(侍墓)살이를 하는데 매일 밤 큰 범이 와서 같이 지냈다고 한다.

권국화의 효행 사실이 알려지자 1899년(광무 3)에 정려(旌閭)가 세워져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다. 정려에는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권국화지문성상을해5월일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權國華之門 聖上乙亥五月日命旌)’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