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원남면 하노리 희암재(遠南面 下老里 希菴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원남면 하노리 희암재(遠南面 下老里 希菴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3. 29. 08:41

 

 

 

 

 

 

 

 

 

 

 

 

 

 

 

 

 

 

 

  • [정의]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안가마골에 있는 무송윤씨의 재실.

  • [개설]
  • 원남면 하노리무송윤씨(茂松尹氏)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3백여 년 전이다. 당시 무송윤씨의 시조인 윤양비(尹良庇)의 14대손 윤청(尹暒)현종(顯宗)경상북도 상주에서 살다가 원남면 하노리 능촌에 세거한 것이 처음이다. 희암재(希庵齋)는 1965년에 세운 것으로, 희암(希庵)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윤진(尹瑱)[1541~1612]의 호이다.

  • [형태]
  •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벽체는 시멘트벽돌로 만들었으며, 지붕은 동기와를 올렸다. 재실 주변은 돌담장을 둘렀는데, 솟을삼문에 ‘희암재(希庵齋)’라는 현판을 달았다.

     

    윤진(尹瑱)은

    조선시대의 인물로 1541년 한성에서 태어났다. 선조 13년(1580) 희능참봉(禧陵參奉)에 이어 선조 17년(1584) 헌능참봉(獻陵參奉)과 제능참봉(齊陵參奉)에 천거(薦擧)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가인 상주에서 군량미와 병사를 모으는 데 힘썼고, 그 공으로 이듬해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에 제수(除授)된 데 이어 사도시주부(司導寺主簿)와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다. 이후 상주의 임진왜란의 참상을 보고서 선조 28년(1595) 스스로 둔전관(屯田官)이 되어 구휼책(救恤策) 12조를 상소해, 조정으로부터 곡식을 지원받아 기근으로 고생하는 백성을 돕는데 힘썼다. 같은 해 6월에는 단성현감(丹城縣監)으로 천거되었으며, 임기를 마치 후 고향으로 돌아오자 주민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워주었다. 김장생과 「삼진도(三盡圖)」를 저술하였고, 상주도남서원(道南書院) 창건을 위해 힘쓴 인물이며, 1612년 사망하였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로리에 있다.[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