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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면 수룡리 이국헌애민선정비(老隱面 水龍里 李國憲愛民善政碑) 본문
노은면 수룡1리에서 신효리쪽으로 길을 가다 오른쪽 너른논을 바라보면 논둑에 커다란 비석이 1기 보인다.이 선정비는 원래 현재 이 곳이 경지정리 되기전서 부터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경지정리가 되기전에도 논둑길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선정비등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곳에 세우는 것이 일상인것으로 보면 이 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길인것으로 추정된다.비석이 있는 노은은 그 명칭의 발단은 이러하다.1630년경 영조 때에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1604~1666]이 산림이 우거진 이 땅에 들어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였다.
이국헌의 선정비는 일반암석을 한쪽면만 다듬고 다른면은 거칠게 다듬었다.
암석에 음각된 선정비의 내용은 낮게 음각이 되고 수많은 세월동안 풍상에 시달려 없어진 글씨도 있다.
목사이후국헌애민선정비( 牧使李侯國憲愛民善政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선정비의 하단부는 땅속에 묻혀있다.
이국헌은 조선 숙종 때인 1689년(숙종 15년) 윤 3월 9일부터 1690년(숙종 16년) 9월 11일까지 충주목사를 지냈다.
이국헌의 선정비는 용관동에 위치한 마애비와 신니면 학성마을 입구의 선정비와 노은수룡리에 선정비등 충주지방에서는 3기가 확인되였다
이국헌에 관해서는 앞의 이국헌의 선정비 설명에서 설명했듯 조선왕조실록에도 이국헌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충주지방에서의 마애비는 수회리에 있는 서유돈선정비와 이국헌 마애비 정도로 희소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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