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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공원 서회보애민선정비(官衙公園 徐晦輔愛民善政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관아공원 서회보애민선정비(官衙公園 徐晦輔愛民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8. 13. 07:15

 

  • [정의]
  • 일제강점기 충주군수를 역임한 행정가이자 교육자.
  • [활동사항]
  • 서회보는 1849년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 12월에 영동군수로 재임하다가 충주군수로 전임하였으며, 1908년 3월 공립충주보통학교 교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충주군수로 있을 때 많은 시설을 만들고 보수하였으며 지역 주민들을 잘 보살펴 많은 칭송을 받았다.
  • [상훈과 추모]
  • 1911년에 서회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군민의 뜻을 모아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군수서후회보애민선정비(郡守徐候晦輔愛民善政碑)를 세웠는데, 도시계획에 의하여 현재는 관아공원 안으로 옮겨다 세웠다. 또한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도로 옆에 영세불망비를 세웠는데, 장호원을 거쳐 서울 다니던 사람들이 말에서 내려서 절을 하고 갔다고 한다. 2002년 부근에 공장을 세우면서 비석의 몸체는 없어지고, 현재 비석받침대만 남아 있다.

     

     

     

     

     

     

     

     

    서회보(徐晦輔, 1849년 음력 7월 27일 ~ 1919년 양력 7월 27일)는 대한제국의 지방 관료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를 지냈다. 본관은 달성이며, 서성의 8세손이라 대구 서씨로도 부른다

     

    대한제국에서 충청북도 영동군 군수를 거쳐 충주군 군수로 지내다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도 계속하여 조선총독부 충주 군수로 장기간 근무했다.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7년에는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되어 2년 뒤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군수 재직 기간 중인 1916년 7월부터 1917년 초까지 약 6개월간 충청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낸 바 있다. 지방토지조사위원회는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심의하기 위한 분쟁지심사위원회의 자문 기구로서, 주로 분쟁지심사위원회의 자문 요청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역할을 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