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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월송리 김진묵불망비(報恩邑 月松里 金振默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보은읍 월송리 김진묵불망비(報恩邑 月松里 金振默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8. 7. 08:48

 

김진묵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1930년 세운 비석으로 비명은 정삼품비서승김공진묵씨영세불망비(正三品秘書丞金公振默氏永世不忘碑)라 하였다.

비는 155*588*30의 크기를 갖추고있다.

비석의 뒷면에는 가선대부행전규장각부제학(嘉善大夫行前奎章閣副提學) 정만조(鄭萬朝)가 짓고

숭록대부전영돈영부 윤용구(崇祿大夫前領敦寧府事 尹用求)가 쓴 비문이 음각되여 있다'

 

김진묵 불망비는 김진묵이 빈민을 구제한 공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건립되였다'

정면1칸 측면1칸의 송덕각 건물안에 비석이 세워졌다.

 

비문을 보호하기위해 1932년 건립된 송덕각 양편에는 김영수가 지은 "송덕비각기"와 현판1매가 편액되여 있다.

위치는 보은군 보은읍 월송리 용천마을 뒷길에 자리하고있다.

 

 

 

 

 

 

 

 

 

 

 

이 송덕비는 조선 말기 용계(龍溪) 김진묵(金振默)의 덕을 기리기 위해 개국(開國) 539년, 즉 1930년에 설치한 비이다. 비문은 부제학(副提學) 정만조(鄭萬朝)가 짓고 판돈영(判敦寧) 윤용구(尹用求)가 썼으며 비각 서문은 윤명학(尹命學)이 지었다.

건립연대가 얼마 안되었으나 비석 건립연호를 개국(開國)으로 사용한 것이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후대에 각자(刻字)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비의 규모는 높이 155㎝, 폭 60㎝의 오석이다.

1932년에 건립한 비각은 8.68㎡ 규모로 전면 1칸, 측면 1칸으로 목조기둥에 팔작지붕의 기와집으로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우 수려하다.

1932년경에 지어진 건축 중에는 건축적인 형태가 매우 균형이 잡혀 있으며, 건축의 각 부재의 사용도 건실한 자재를 사용하였고 가구의 수법은 매우 정교한 기교가 엿보인다. 근대 건축 중에서 전통적인 건축형식을 갖춘 건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규모와 건축양식면에서 우수하며, 내부 상단 벽면에 16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벽화는 비문을 쓴 윤용구(1853∼1939)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윤용구는 해서와 행서에 능하고 난과 대를 잘 그렸다. 비각 좌측면 현판은 임신년(壬申年, 1932)에 윤명학이 쓴 것으로 일본 연호 ‘소화(昭和)’를 사용하지 않고 고갑자(古甲子)를 사용하였다. 이는 일본 연호 사용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김진묵의 자는 성학(聖學)이고 호는 용계(龍溪), 본관은 김해이다. 조선 철종 10년(1859) 보은에서 출생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모범이 되었으며, 구한말 잦은 수해와 병란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지자 곡식을 나누어 주어 빈민구제에 앞장서 주민들이 그 덕을 기리어 송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진묵은 내부(內府)와 외서(外署)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목릉(穆陵, 선조(宣組)의 릉)을 다시 축조하고 비서승(秘書丞)에 올랐다. 일제시대에 건립된 건축물로 규모, 양식 등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근대로 들어서는 과도기의 건축물로 건축적인 기교나 수법은 매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