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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교사리 송익흠불망비(報恩邑 校士里 宋益欽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보은읍 교사리 송익흠불망비(報恩邑 校士里 宋益欽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8. 8. 08:48

 

춘수골이라 불리우는 교사리에 있는 비석군중 왼쪽에서 첫번째 비석이다

비석의 크기는 52*154*25이며 비수부분을 각지게 다듬은 일체형이다

비의 전면에는 현감송공익흠천고불망비(縣監宋公益欽千古不忘碑)라고 쓰여있다.

 

송익흠의 생몰년은  1708년(숙종 34) 1월 18일∼1757년(영조 33) 11월 10일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자는 시해(時偕)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출신지는 충청남도 회덕군(懷德郡: 현 대덕군(大德郡) 회덕면)이다.
증조는 공조정랑(工曹正郞) 송광식(宋光栻)이고, 조부는 장악원정(掌樂院正) 송병하(宋炳夏)이다.

부친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송요화(宋堯和)와 모친 군수(郡守) 김성달(金盛達)의 딸 호연재(浩然齋)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현감(縣監) 민승수(閔承洙)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1750년(영조 26) 서사(筮仕)로 천거되었다. 1751년(영조 27) 도감감조관(都監監造官)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1754년(영조 30)에 이르기까지

금부도사(禁府都事)‧홍천현감(洪川縣監)‧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보은현감(報恩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타고난 기질이 고상하고 행동을 삼가며, 말을 하면 일에 맞으니 자연히 도(道)에 가까웠다. 일찍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을 흠모하여 곁에서 모셨다.

문장에 뛰어난 자질이 있었고, 특히 시는 고풍스럽고 그윽한 아취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시인으로 명성이 있었던 모친 호연재와 외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향년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송기연(宋起淵)이다.

묘는충청남도 회덕군 송촌(宋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