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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금호유고(淸州博物館 錦湖遺稿)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청주박물관 금호유고(淸州博物館 錦湖遺稿)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9. 8. 13:08

 

 

 

 

본관은 평택(平澤)이고, 자는 사수(士遂), 호는 금호(錦湖)이다. 북병사(北兵使)를 지낸 임준(林畯)의 아들로 1531년(중종 26) 진사가 되었고, 1535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사서(司書) 등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후 1537년 주서(注書)·기사관(記事官), 1538년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 1539년 종사관(從事官)·검토관(檢討官)·경연관(經筵官)·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 1540년 회령판관(會寧判官), 1542년 지평(持平), 1543년 종성부사(鐘城府使)·부사(副使)를 거쳐 1544년 예조정랑 황해도재상어사(禮曹正郞黃海道災傷御史)禮曹正郞黃海道災傷御史)와 검상(檢詳) 등을 지냈다.

1545년 명종
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 소윤(小尹)에 의하여 대윤(大尹) 일파가 숙청되었는데, 임형수도 소윤의 영수 윤원형(尹元衡)의 미움을 받아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좌천되었다가 파직되었다.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이라고도 하는 정미사화 때 대윤 일파로 몰려 절도안치(絶島安置)된 뒤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즉위년인 1567년에 신원(伸寃)되었고, 1702년(숙종 28) 나주의 송재서원(松齋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796년(정조 20)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기재잡기(寄齋雜記)》에 따르면 "뜻이 크고 기개와 지조가 있었으며, 문장에도 능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도 잘하여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재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금호
유고(錦湖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