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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 율리석불(曾坪邑 栗里石佛)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읍 율리석불(曾坪邑 栗里石佛)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9. 25. 09:40

 

율리석조관음보살입상(栗里石造觀音菩薩立像)은 증평 시가지에서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 방면으로 503번지방도를 따라 가면 증평읍 율1리에 이른다. 이 불상은 율1리 앞의 들판에 있던 석조물인데, 1979년에 율리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수몰되자 지금의 위치인 저수지 서편 언덕으로 옮겨졌다. 당시 보살입상(菩薩立像) 밑에서 지석(誌石)이 출토되었는데, “대시주 서정민 서경술 석수 박노적 박성립 화주 한두성 숭정후 갑신년 10월 일 입(大施主徐丁民徐京戌石手朴老赤朴成立化主韓斗星崇禎後甲申年十月日立)”이라는 기록이 있었다. 이로 보아 보살입상은 숙종 30년(1704)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다듬어진 보살입상은 높이 2.10m로, 불신(佛身)은 육중하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상호는 마멸이 심해 원형을 알 수 없고, 귀는 어깨에 닿았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위로 들어 가슴에 얹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이고,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린 여원인(與願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활모양의 주름을 하고 있는데, 허리에 띠를 두른 듯하다. 2002년 3월15일에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이 보살입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마을의 한 노인이 미륵을 정성껏 모시다가 그만 귀찮아서 더 이상 모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노인의 머리에 부스럼이 많이 났다. 노인은 백방으로 처방해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에 미륵에게 다시 빌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 또 미륵 옆에서 논일을 하던 농부가 새참을 먹고 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논두렁이 무너져 내렸다. 이에 미륵에게 약간의 공양을 하였더니 더 이상 논두렁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농부는 무엇을 먹더라도 미륵에게 공양을 했다. 또 아들이 없어 고민하던 부녀자가 미륵에게 치성을 드리고 한 번에 삼형제를 출산했다. 미륵의 영험으로 간주해 “아들 하나만 데려가라.”며 기도를 올렸더니, 이번에는 삼형제를 한꺼번에 데리고 갔다. [증평문화원]

 

 

일년여만에 다시 찾은 율리석불은 주위도 깨끗히 정돈되여 있고

삼기저수지 둘레에 산책로도 잘 정비되여 있다.

 

증편시민들의 휴식처로 좌구산 휴양림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