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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화곡리 김극충효자문(周德邑 花谷里 金克忠孝子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화곡리 김극충효자문(周德邑 花谷里 金克忠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9. 30. 21:13

 



 

김극충은 1553년생으로 아버지 군수공이 이곳 충주로 낙향하여 천성이 지효하시고 지내셨는데 부군이 부임하시면 가사를 포기하시다시피 따라가 슬하를 떠나지않으니 향안에서는 물론 관민의 칭송을 한몸에 받았던 효자이시다. 집의공의 춘추 42세로 시탕에 여념이 없을 때 강도 수십명이 군수공을 범함에 맨손 대 무기와 단독대 다수가 어찌 적수가 되랴 집의공의 등과 다리를 향해 3, 4회나 나려 꽂혔다 그로인해 집의공은 절명되었고 아버지는(군수부군)효자의 덕으로 상처는 가벼웠지만 임종하셨다. 때는 1954년 3월 29일 우리낙향조이며 중시조인 군수부군 부자분이 옥쇄하신 날이고 집의공의 만고 효자로 발돋움한 날이기도 하다.조선 선조때의 효자로 임진왜란 후인 1594년(선조 27) 3월 29일에 강도 수십명이 침입하여 아버지를 해치고자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자 김극충은 아버지를 구하려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감쌌으나 뜻을 이루지못하고 칼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참으로 하늘이 낸 효자였다. 이 뜻이 조정에 알려지게 되자 1736년(영조 12)에 향리의
벼슬아치와유생들이 상소하여 1742년(영조 18)에 뜻을 모아 정문을 세웠고 김극충에게는 통훈대부 사헌부 집의에 증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