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효촌마을 지명유래 본문

전설따라 삼천리/전설 그리고 민담등

효촌마을 지명유래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4. 5. 08:56

충청북도 청주시 효촌리가 있다.

 

유래는 慶延(경연)의 효심이 지극하여 조선조 숙종 12년 (1648) 효자 경연을 후세 에 귀감을 삼고자 효자비를 세우게 하였다

비석 글은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그 내용 을 보면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잉어 를 먹으면 병이 낫겠다하시어 근방의 소곳이란 못으로 가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니 얼음이 녹고 잉어가 잡혔다. 또 생고사리가 먹고 싶다고 하여 떡을 한 시루 해가지고 백설이 뒤덮인 東山에 올라가서 기도하니, 시루를 놓았던 자리에 뽀얗게 고사리 움이 돈아 자라나고 있었다 ,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효성 지극하여 소원을 풀어 병석에서 일어나게 되니 사실이 만천하 에 알려져 중국에서도 칙사를 보내어 徵君(징군) 이란 호까지 내려 주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앞산을 고사리골 이니 시루봉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孝子村(효자촌) 이라 부르게 되었다

경연의 지극한 효성이 이웃 마을에도 알려져 양수척 三兄弟가 할아버지 효에 감동되어 지극한 효자가 되었다 고한다.

 양수척(楊水尺)은 효행으로 이름이 나서 조선 세조~성종년간에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들과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를 걱정하다 병을 얻어 눕게 되고, 마침내는 누운 채로 배변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들 삼형제는 그냥 놔둘 수 없으니 고려장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차비를 차렸다.

이때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경대유(경연)가 이 소문을 듣고 삼형제를 불러 꾸짖자 양수척 삼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노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양수척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이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 세워졌다. 비석의 마모상태로 보아 아마도 조선 전기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오늘까지 이러한 전설이 碑(비) 와 더불어 내려오고 그 언제인가 孝子村은 오늘의 孝村으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