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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량면 조동리 김시희선정비(東良面 早洞里 金始熺 善政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동량면 조동리 김시희선정비(東良面 早洞里 金始熺 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2. 3. 20:58

 

충주댐을 지나 동량면 면소재지로 접어들면 면소재지에 동량초등학교가 보인다.

동량초등학교 입구좌측에 보면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동량면 소재지등에 산재하고 있던 여러 석조유물이라든지 선정비등을 모아놓은 곳이 있다

여러 석조유물에 대한 안내판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의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것 같다.

 

유물 하나하나의 자세한 설명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 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시희의 선정비이다.

 

자세한 건립경위는 알 수 없지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에서 ‘인천부사 김시희

’의 선치(善治)에 대한 내용과 영천군수 재직 때의 선치로 당상관이 되어 마땅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충원현감 때의 선치로 인해 선정비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정원 일기를 보면 

 영조 7년 신해(1731,옹정 9)

 7월7일 (무진)
이조에서 어사의 서계로 인하여 운봉 현감 등의 포상 문제를 복주하다

이조에서 어사(御史)의 서계(書啓)로 인하여 복주(覆奏)하기를,
“운봉 현감(雲峰縣監) 윤취리(尹就履)는 치적(治績)이 여러 고을 가운데서 가장 높으니 마땅히 가자(加資)해야 하고, 영천 군수(永川郡守)
김시희(金始熺)와 의흥 현감(義興縣監) 이사제(李思悌)는 마땅히 준직(準職)을 주어야 하고, 대구 판관(大丘判官) 한덕필(韓德弼)은 승서(陞敍)하고 함양(咸陽)의 전(前) 군수(郡守) 김광(金洸)은 마땅히 표리(表裏)를 하사하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옳다.”하였다.

 



 

 

 

 

비좌이수 형태로, 통돌 1매로 제작되었으며 이수 부분은 돌출되었다. 비신은 41.5×127×20㎝, 이수 부분은 44.5×26×31㎝의 크기이며,

이수를 단순화시킨 원형의 음각을 하였다. 대석은 시멘트로 대충 만들어 세웠다.

 

비의 옆면을 보면 위에서 부터 역사다리꼴로 생겨 하단으로 올수록 가늘어 보인다

대부분의 비의 형태가 안전적 조형미를 추구하기위해 상하부의 굵기가 같은데 말이다.

 

 

 

 

 

비의 앞면에는 8㎝×6㎝의 해서체로 ‘현감김공시희선정비(縣監金公始熺善政碑)’라 음기하였고

뒷면에는 ‘건륭사년기미정월일입석(乾隆四年己未正月日立石)’이라 각자하였으나 마모가 심하다.

건륭4년은(영조35년) 서기 1739년이다.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며, 동량초등학교 정문 옆 소공원에 모아놓은 네 개의 비석 대좌는 모두 시멘트로 만들어 세워 눈에 거슬린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참고하면 영조김시희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김시희는 부호군을 거쳐 영천군수, 이천부사, 인천부사 등을 역임하며 선치(善治)를 베푼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