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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면 금정리 하동정씨정려(深川面 錦汀里 河東鄭氏旌閭)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영동군(永同郡)

심천면 금정리 하동정씨정려(深川面 錦汀里 河東鄭氏旌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2. 21. 10:10

 

하동정씨 정려는 영동군 향토유적 제 49 호 열부(烈婦)인 정씨는 하동(河東) 사람이고 민보광(閔普光)의 아내이다. 정씨는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겼고, 온화함으로 남편을 섬기었다. 남편 사후 삼년 동안 죽을 마시고,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안 빗고, 묘 옆에 움막을 짓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혼백(魂魄)을 붙들고 슬피 울었다 한다. 그의 열행이 뛰어나 성종 2년(1471)에 정려(旌閭) 되었고, 이 정문(旌門)은 영조 40년(1764)에 건립하였다. 정면 1칸 측면 1칸, 둥근기둥 맞배 목조 기와집이다

 

금정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정려문에는 정려가 걸려있다 

정려문에는 열부별제민보광처증숙부인하동정씨지려(烈婦別提閔普光妻贈淑夫人河東鄭氏之閭)라는 정려가 걸려있다.

 

 

심천면은 조선시대에 영동현 서서일면(西西一面)의 상단구리(上丹丘里), 하단구리(下丹丘里), 구탄리(九灘里) 장동리(獐洞里), 고당포리(高塘浦里), 대초지리(大草旨里)와 서이면(西二面)의 마곡리(麻谷里), 지계리(技界里), 남이면의 힘물내(二十川里)지역이다.

1914년 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 령에 따라 서일면과 서이면을 병합하고 남이면의 태소(太沼)와 힘물내의 2개동, 옥천군 이내면(伊內面) 내동(內洞) 일부를 편입시켜 양강천(楊江川)과 송천(松川)이 합류하여 심천(深川)이 되므로 심천면이라 고치고, 단전리(丹田里). 심천리(深川里). 용당리(龍塘里). 초강리(草江里). 고당리(高塘里), 구탄리(九灘里), 장동리(猜洞里), 길현리(吉峴里), 각계리(覺溪里), 약목리(藥沐里), 기호리(耆湖里), 명천리(明川里)등 14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1982년 고당1구와 2구를 고당1구 · 2구 · 3구로 분리하였고, 1984년 심천리를 심천1구와 2구로 분리하여 현재는 14개 법정리에 20개 행정리, 37개의 자연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금정 마을은 지금부터 500여년전 梨亭 閔普光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觀漁臺는 기암이 휘어 감고 맴돌며 벼랑 위에는 송림이 우거져 있어 고기가 노니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절경중의 절경이며 명승지이다.
淑夫人 河東鄭氏는 열행이 지극하여 1471년 성종대왕께서 정려를 하사 하시여 마을입구에 정문을 건립하고 후손들이 숭모하여 효행을 실천하고 있으며 500년을 이어오며 마을에서 배출한 주요 인물로는 황해병마절도사를 지낸 梨亭公의 손자 安迪, 가정대부로 황해감사를 지낸 5대손 泮, 四대 五대 국회의원을 지낸 17대손 壯植이 있으며 이후 후손들이 번창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을 전 주민이 화합 단결하여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 때 1975년도에는 31㏊의 경지정리를 완료하여 획기적인 식량증산으로 농가소득을 증대하였으며 77년 11월 13일에는 새마을의 금자탑인 경제동향보고 마을로 지정 대통령 표창을 받아 전국 최우수 마을의 영광을 차지하여 경향 각지 각 마을의 추앙을 받기도 하였다.

 

 


 

 

 

 

 

 

금정리 마을입구에 들어오는길에 하동정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