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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제내리 비석동산 본문
제내리에 전해오는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풍덕마을의 동쪽 언덕인 제내리 353번지에 입향조 이덕량의 장남인 이정지(李廷芝)의 묘와 묘역 입구에 묘비가 있다. 묘역은 넓고 여러 기의 묘가 있다. 이정지의 묘는 가장 상부에 있으며 10여 평의 규모에 상석과 망주석이 있다.
묘비는 묘역으로 진입하는 입구인 마을쪽 언덕 위에 있으며 비각을 세우고 있어 이채롭다. 비석의 총 높이는 221㎝이며, 비신의 높이가 174, 폭 58, 두께 29㎝이다. 지붕돌은 103×69㎝에 높이가 47㎝이며, 대석은 105×73㎝이다.
비문의 횡액(橫額)은 증호조참판이공묘갈명(贈戶曹參判李公墓碣銘)이고, 종액(縱額)은 ‘유명조선국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이공묘비명병서(有明朝鮮國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李公墓碑銘幷序)’ 라 하였다. 비문 말미에 ‘숭정 갑신후2 경술12月 日 이세환 찬, 조언신 서, 정익하 전(崇禎 甲申後二 庚戌十二月 日 李世煥 撰, 趙彦臣 書, 鄭益河 篆)’이라 하고, ‘4경자11월 일 이수, 4계축 2월 일 이수(四庚子十一月 日 移竪 四癸丑二月 日 移竪)’라 기록하고 있는 전후 양면비이다.
이상의 기록으로 보아, 1730년에 세웠으며, 1840년과 1853년에 옮겨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언덕을 비석동산이라고 하고 있는 것은 이 비석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유래된 지명이다.
이정지는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아버지는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의 입향조인 이덕량(李德樑)이다.
[활동사항]
이정지는 어려서부터 밖에 나가 놀다 돌아와도 부모님께 절을 올렸으며, 어머니의 병환에 밤낮으로 의대를 풀지 않고 간병하였다. 돌아가시자 상례를 어긋남이 없이 하였다. 아버지가 병환 중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가뭄에 잉어잡기가 어려워 연못에 가서도 구하지 못하여 하늘에 부르짖고 돌아오던 도중에 홀연히 큰비가 쏟아져 개울이 넘쳐흘러 바라보니 잉어 한 쌍이 물길을 따라 올라오는 지라 잡아 돌아오니 동네 사람들이 하늘이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 말하였다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세금이 많다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친척으로부터 이웃에 이르기까지 초상이나 병환을 당하면 반드시 도와주고 또한 굶주린 사람을 구제해 주어 주위 사람들이 존경하고 칭송하였다. 팔순이 넘어서자 관례에 따라 호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중앙에 있으며, 묘소 입구 마을 쪽에 묘비가 있어 묘비각을 세웠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이곳을 비석동산이라고 부른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아버지는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의 입향조인 이덕량(李德樑)이다.
[활동사항]
이정지는 어려서부터 밖에 나가 놀다 돌아와도 부모님께 절을 올렸으며, 어머니의 병환에 밤낮으로 의대를 풀지 않고 간병하였다. 돌아가시자 상례를 어긋남이 없이 하였다. 아버지가 병환 중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가뭄에 잉어잡기가 어려워 연못에 가서도 구하지 못하여 하늘에 부르짖고 돌아오던 도중에 홀연히 큰비가 쏟아져 개울이 넘쳐흘러 바라보니 잉어 한 쌍이 물길을 따라 올라오는 지라 잡아 돌아오니 동네 사람들이 하늘이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 말하였다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세금이 많다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친척으로부터 이웃에 이르기까지 초상이나 병환을 당하면 반드시 도와주고 또한 굶주린 사람을 구제해 주어 주위 사람들이 존경하고 칭송하였다. 팔순이 넘어서자 관례에 따라 호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중앙에 있으며, 묘소 입구 마을 쪽에 묘비가 있어 묘비각을 세웠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이곳을 비석동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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