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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소이면 갑산리 문경공부조묘(蘇伊面 甲山里 文景公不祧廟) 본문
소이면 갑산2리 동녘마을에 봉안된 조선초기 문신인 권제의 사묘이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권제는 1387(우왕 13)∼1445(세종 27).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도(蹈), 자는 중의(仲義)·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검교시중(檢校侍中) 고(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희(僖)이고, 아버지는 찬성 근(近)이며, 어머니는 우정언 이존오(李存吾)의 딸이다. 부인은 판사(判事) 이휴(李携)의 딸이다.
처음에 음보(蔭補)로 경승부주부(敬承府注簿)에 기용되었으나 감찰 때 대사헌의 비위에 거슬려 파면되었다. 1414년(태종 14) 친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우헌납(右獻納)이 된 뒤 병조정랑과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를 거쳐, 1416년 사예(司藝), 1418년에 사인(舍人)을 지냈다.
1419년(세종 1) 집의(執義)가 되었으며, 사은사 경녕군 비(敬寧君裶 : 태종의 제1서자)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과 좌대언(左代言)을 차례로 지냈다.
1423년 집현전부제학이 된 뒤 예조판서·대사헌·함길도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 해에는 평안도도관찰사가 되었다. 1430년 경창부윤(慶昌府尹), 1432년 경기도관찰사, 이듬 해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며, 1435년 이조판서, 1437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계품사(計稟使) 혜령군(惠寧君)의 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그 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임명되었다. 1439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었으며, 1442년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를 겸해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인 신개(申槩)와 함께 『고려사』를 찬진(撰進)하였다.
1443년 좌참찬으로 전라도도관찰사가 되었고,1444년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 이듬 해에는 우찬성이 되어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오랜 동안 문형(文衡 : 대제학의 다른 이름)을 역임했으며, 작품으로 「세년가(世年歌)」가 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솟을삼문이 있다. 사당에는 '충주별조재건기(忠州別祧再建記)'라는 문구가 있고, ‘문경공 부조묘(文景公 不祧廟)’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솟을삼문에는 한자로 ‘경앙문(景仰門)’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부조묘라 함은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을 말한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부조묘는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부조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중엽 이후 사당을 짓게 되면서부터이다.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 묘 밑에 설치할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둘 수 있게 됨으로써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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