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남이면 구암리 박춘무 묘소(南二面 九岩里 朴春茂 墓所) 본문

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남이면 구암리 박춘무 묘소(南二面 九岩里 朴春茂 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8. 20. 14:47

 

남이면 구암리에 위치하고 있는 민양공 화천당 창의사 박춘무선생의 묘소이다.남이면 구암리에서 청주로 들어오는 길가에 작은 팻말이 보인다. 박춘무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사육신 박팽년의 아우 인년(引年)의 8세 손이었던 기정(箕精)의 넷째 아들이다.그는 '토정비결'이라는 책을 지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에게서 배웠다.청주 읍성 탈환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진 옥천의 조헌(趙憲)도 박춘무와 함께 이지함에게서 배운 문인(門人)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화천당(花遷堂). 찰방(察訪)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창의사(倡義使)가 되어 의병을 일으키고 조헌(趙憲)과 함께 호서지방을 지키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침구술(鍼灸術)이 뛰어나 의관(醫官)으로도 활약하였으며, 뒤에는 지방관으로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임천군수(林川郡守) 인천부사仁川府使)를 역임하고, 이듬해는 부평부사(富平府使) 등을 지낸 바 있어 관계(官階)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까지 이르렀다. 참찬(參贊)에 추증되고, 시호는 민양(愍襄)이다.

 

 

 

차 하나 겨우 다닐만한 농로를 따라 차를 몰다보면 우측 낮은 야산에 박춘무선생의 신도비가 보인다.신도비를 따라 안으로 진입하다보면 차량을 주차시킬수 있는 넒은공간이 묘소밑에 자리하고 있다.묘소에 자리하고 있는 박춘무의 묘비석이다.

 

 

 

 

 

 

 

묘소는 송림으로 둘러싸여 잘 보존되고 있으며 산소는 호석을 두르고 있다.무인석과 동자석 상석등 각종 석물등은 근래에 새로 제작하여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