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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화창리 인천채씨효부각(米院面 禾倉里 仁川蔡氏孝婦閣)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화창리 인천채씨효부각(米院面 禾倉里 仁川蔡氏孝婦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12. 31. 19:41

 

미원면 화창리는 광주정씨의 집성촌이다.

화창리 숫골의 마을표지석을 보면서 숫골쪽으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숫골 도착하기전 인천채씨효부각을 만날수있다. 

 

 

 

 

모자리 내기전 화창리를 방문했을때 마을 초입의 모습이다

그때는 마을초입에 있는 광주정씨가문의 공적비만 보고 왔던 기억이 난다.

 

 

인천채씨 효부각은 광주인 정의창()의 부인 인천채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부각으로 1724년(경종4)에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896년(건양 1)에 중수하고 1983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을 낮은 벽으로 쌓아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부문 편액을 걸었다.

 

효부각안에 걸려있는 정려문에는 정려를 받은 시기가 숭정재기유(崇禎再己酉 )라 표시되여 있다.崇禎再己酉라 함은 1729년(영조5)임으로 표시되여 있는데

효부각을 안내하는 안내판에는 1724년(경종4)로 표시되여 있다.

둘중에 하나는 바로 잡아야 할것 같다. 본문에 인용한것은 안내판에 의거한것임을 밝힌다.

 

 

 

인천채씨의 효부각안에는 효부학생정의창처인천채씨지문(孝婦學生鄭義昌妻仁川蔡氏之門)이라는 편액을 걸려있다.

막돌로 쌓은 돌담을 두르고 스테인으로 출입문을 만들었다.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 보존되고 있다. 또한 1983년에 중수된 중수기 현판이 같이 걸려있다.

 

 

 

 

 

 

 

인천채씨는 한겨울 시어머니가 한겨울에 고사리가 먹고 싶다고 하자 길을 나서 고사리를 찾던중 햇볕이 비치는 곳에서 고사리를 발견하여 시어머니에게 해드리고 시아버지가 편찮을 때는 단지주혈하고 자신의 젖을 짜서 먹게 함으로 생명을 유지시켰다고 한다.

또한 인천채씨의 남편인 정의창 또한 단지주혈로 부모님을 섬겼다고 한다. 단지주혈( 斷指注血)이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여 먹임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효자문이나 효자비의 이야기에는 계절에 맞지않는 과일이나 또는 생선등이 많이 등장한다

한겨울에 딸기라든지  또는 고사리 한겨울에 잉어등 물고기를 잡는다든지 하는 현실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효를 중시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지극한 효의 나타냄을 위하여 그리 하지 않았나 싶다.

중국의 고사인 맹종과 왕상의 고사를 인용하여 전국 각처에 비슷한 전설의 효자및 효부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공자는 ‘효도와 공경은 인을 행하는 근본’(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논어 ‘학이’편)이라 했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삼강오륜을 논할 때처럼이야 어렵겠지만, 돈이나 선물도 좋지만 외롭게 지내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이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철, 윤선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가사문학 대가로 꼽히는 노계 박인로(朴仁老)의 시 한 수가 생각난다.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조홍시가(早紅詩歌)의 둘째 연으로 중국의 유명한 효자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 못지않게 효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