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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 죽리 천제단(曾坪邑 竹里 天祭壇)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읍 죽리 천제단(曾坪邑 竹里 天祭壇)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7. 25. 09:19


원평 마을에 임진년 마을 주민들이 괴질에걸렸을 때, 마을에 천제단(天祭壇)을 모셔 놓고 기도를 드려 질병을 낳은 후 매년 음력 정월14일 마을 입구에 있는 250년 정도의 버드나무 밑에서 마을 고사를 지내오고 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질병이나 1950년 6.25전쟁에도 다치거나 사상자가 없었다고 노인들은 말하며 모두가 마을 고사의 덕으로 알고 있다.


철재망으로 천제단 주변을 둘러 보호하고있다.

천제단에 얽힌 이야기나 유래등을 적은 안내판정도라도 비치하고 있다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천제단이 자리하고 있는 죽리는 1914년에 새로 붙은 마을 이름이다. 본래는 남하리ㆍ덕상리ㆍ남차리의 중간에 있으므로 ‘중리(中里)’였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과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도 ‘중리(中里)’로 기록되어 있다. 김기빈(1995)의『일제에 빼앗긴 땅들을 찾아서』에는 “증평읍 죽리는 그 전에 청안군 남면 지역으로, 남하리와 남차리의 중간에 있었으므로 중리(中里)라 불렀던 곳이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폐지ㆍ분합할 때 인근의 마을을 합해 죽리(竹里)가 된 곳이다. 죽리의 내력이 확실하지 않으며 그 이전까지 중리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은 과거 대나무가 많았고 대나무는 선비를 상징하는 바, 이런 뜻에서 죽리(竹里)가 본래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 중기 시인 백곡 김득신(金得臣, 1604~1684) 의 시 ‘죽리고연(竹里孤煙)’이 그것이다.  김득신(金得臣)의 ‘죽리고연(竹里孤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리고연(竹里孤煙)-죽리의 외로운 연기


노수빙헌만(老叟憑軒晩)-저물녁 난간에 기댄 늙은이     유유야흥견(悠悠野興牽)-아득한 들녁 흥취에 끌리네

소림횡낙일(疎林橫落日)-성긴수풀에 지는해 비꼍는데   황점노고연(荒店노孤煙)-쓸쓸한 주막에 외로히 연기되여 오르네




마을 사이에 있다하여 중리(中里)라 부르고
출장 관원 숙식하던 원(院)집은 흔적없고
많은 길손 나들이 사거리는 여전한데
철마길이 되려가다 한촌(閑村)이 되었구나.


원곡(院谷)에 서당지어 공부하던 한사정(閒士亭)
아래 사람에 후덕하라 교훈 남긴 풍천임씨
천제단에 기도드려 마을 안녕 빌어오며
중리들에 풍년 들고 마을 평화 이뤄보세[증평군 마을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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