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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여공 효자각(梁汝恭 孝子閣)..충주 문강리 문산마을 본문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문산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양여공의 정려문.
[개설]
양여공 효자각은 조선 세종 때 병조좌랑을 지낸 양여공(1378~1431)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양여공은 1396년(태조 5)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올랐으나 병사(兵事)를 상왕(上王)에게 보고하지 않은 죄로 함안(咸安)으로 장배(杖配)되었다. 이후 청풍, 충주 등지로 이배(移配)되다가 유연생(柳衍生)의 유언비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양여공은 시와 글에 능했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 양여공은 본래 조용하고 인자하며, 의로웠으며, 9세 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모친을 봉양했는데, 조석으로 부모를 잘 섬겼으며 작은 일 하나에도 어그러짐이 없었다. 이러한 효행으로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에 추증되었고 정려를 명받게 되었다.
[변천]
원래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었으나, 1808년(순조 9) 예성양씨 후손들이 살미면 문강리에 거주하게 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중건하였다.
[형태]
서남향 배치로서, 정면 1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앞면에만 홍살을 세우고 나머지 삼면은 벽으로 막았다. 자연석으로 1단을 축조한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았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栱包)와 창방(昌枋)을 생략하여 간결한 납도리의 삼량(三樑)집이다.
[현황]
건물 안에는 “효자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홍문관사 예문관사 령경연사 성균관사 춘추관사 관상감 행통덕랑 사간원우정언 지제교양여공지려명정려(孝子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弘文館事藝文館事領經筵事成均館事春秋館事觀象監行通德郞司諫院右正言知製敎梁汝恭之閭命旌閭)”라고 판각된 편액이 걸려 있으며, 정려문 주위는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양여공은 대장군 양능길(梁能吉)의 15대손으로 비록 사형을 당하고 나서 효자문이 세워졌지만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효행이 지극했고, 시와 글에도 능해 영의정에 증직된 인물이다. 또한 예성양씨로서, 충주 지역에서는 잘 보존, 관리되어야 할 정려문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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