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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도안면 화성리 연병혁공덕비(道安面 花城里 延秉爀功德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도안면 화성리 연병혁공덕비(道安面 花城里 延秉爀功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9. 11. 08:46




비석은 도안초등학교 입구에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우당연병혁교장공덕비( 宇塘延秉爀校長功德碑)라고 적혀있다.[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도안초등학교 입구 좌측에 위치하고있는 도안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연병혁의 공덕비이다.


증평 괴산저널의 2006년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연병혁 교장 하면 60세 이상 증평에서 사는 사람들이면 거의 기억할 것으로 안다. 우선 거의 7년간(1961.2.~1967.12월) 증평 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한 것도 기록이며(거의 2년간 근무가 보편적이었음.) 교장으로서의 행적 또한 특별 하였다.
현 교사 자리가 당시에는 학교에 속한 밭으로서 실습장으로 거의 꽃밭으로 가꾸었고 토마도 등을 심어서 모두 학교 소사들의 몫이었다.

연교장은 부임하면서 그 밭을 엄밀하게 챙겼다.
직접 학생 들로 하여금 실습장으로 활용 시키었으며 자기가 직접 똥 푸리를(당시만 해도 비료를 안 쓰고 밭에는 인분을 사용) 해가면서 진두지휘를 하는 바람에 불평을 하는 교사들이 더러 있었고 오히려 학생들은 재미있어하는 측이 많았다. 자기들 손으로 가꾼 것이 결실을 맺고 수확을 할 적에는 함성을 지르기도 했었다.
목소리가 컸고 분명 하였고 설득력이 대단하였다. 사람사귀기를 좋아했는데 한번사귀면 영원했다.
재임 중 37사단에 비슷한 성격의 인테리 사단장이 있었는데 카이젤 수염을 길렀고 아주 보수적이며 장병들에게 공자의 논어를 몇 시간씩 강연하는 실력가로 꼽힌 金益權(김익권)장군으로서 어떤 기회에 인사를 나누었는데 직석에서 의기가 투합하여 의형제를 맺었는데 연교장이 몇 살 위라서 당연히 형님이 되었고 아주 친형제처럼 우의가 좋았다.
그로 인연하여 군인의 대민사업이 최대로 활용되었고 연교장의 힘으로 신설한지 얼마 안 된 삼보학교는 운동장등이 완성 될 수 있었음. 바둑실력도 수준급 이었는데 김익권 장군도 우연한 일치로 맞수여서 휴일에는 꼭 만나서 바둑을 즐기었다.
피차 술 실력도 아주초보여서 더 의기가 투합했고 그렇게 교우하다가 김 장군이 먼저 전속되어 떠날 적에 연교장의 서운해 하던 우애는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고 당시 두 분의 만남에 측근에 있던 필자의 기억에 역역하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헤어짐 이후에도 유명을 달리 할 때 까지 그들의 의리는 꾸준하였다.
연교장의 일화는 너무 많다. 그의 인품과 행적은 충북도내 교육계뿐 아니라 행정부 쪽에서도 지사와 국장들 모두가 알아준 분이었다.
7년간 근무하고 교육장등을 두루 역임하다가 1972년 정년을 2년 남기고 고향인 도안초등학교로 자청해서 발령 받고 1974년2월말 정년 할 때까지 학교 주변 가꾸기와 손수 교내 텃밭 가꾸기에 열심 하시었고 정년 후에 풍수지리 학문에 연연하시다 1983년4월2일 76세에 별세하심.
자녀복도 대단해서 4남과 6녀를 두심. 큰 자제 연종희 씨는 사리면에서 석산 개발을 하고 2째 자제 연길희 씨는 괴산 군 의회 의원을 역임 하고 조용하게 농사일에 열중하고 있다. 2006. 4. 13.[증평괴산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