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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의 창가에서/風景속에 비친 詩

굴비.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9. 17. 16:48




굴비-----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ㅡ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ㅡ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가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ㅡ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ㅡ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ㅡ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ㅡ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려주며 말했다

ㅡ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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