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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엄정면 목계리 홍수흔적기념비(嚴政面 牧溪里 洪水痕跡紀念碑) 본문
주의깊게 살피지않으면 그냥 지나칠 확률이 높다.예전에 목계우체국자리옆에 홍수흔적기념비라 하여 건설부에서 작은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목계가 오늘날 같이 초라한 마을이 된 가장 큰 요인은 1972년 대홍수 때문일 것이다.1972년 8월에 태풍 베티의 영향으로 남한강유역에 집중적인 호우가 내렸다.단양등 상류지역에 큰비가 내리며 남한강 유역인 목계리도 그 법위에 속해 큰 재난을 입게 된다.홍수피해로 인하여 기존의 목계거리는 물을 피해서 다시 마을이조성되게 된다. 그 이후 기존 시기지는 쇠락하여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1972년 8월 대홍수로 인하여 마을의 대부분이 침수되어 아랫마을과 건넛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새마을이나 외지로 이주하는 바람에 마을의 모습은 급변하게 되었다.또 다른 요인은 1973년 목계교의 건설이다. 이 다리의 건설로 목계나루가 폐쇄되었으며, 건설인부로 왔던 많은 사람들이 내계의 새 동네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이후 1990년 목계마을의 홍수 피해를 알려주는 홍수흔적기념비를 (구)목계우체국 앞에 세워 놓았다.
지금의 목계리는 많은사람들에게 남한강이 산지가 되는 수석의 마을로 많이 알려져 있다.지금도 길 양편으로 있는 수석집의 모습을 볼수가 있다.
홍수흔적기념비(洪水痕跡紀念碑)는 (구)목계우체국 화단에 조성되여있다.개인에게 양도된 지금의 건물도 폐쇄된체로 방치되여 있어서 지금의 목계거리의 형편을 대변해 주는것 같다.[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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