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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면 잠병리 김예몽신도비(金加面 岑屛里 金禮蒙神道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금가면 잠병리 김예몽신도비(金加面 岑屛里 金禮蒙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0. 23. 11:46


금가면 잠병리 막고개에 위치하고 있다.신도비는 후손들에 의하여 1973년에 세웠다.

1429년(세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정자가 되었다. 저작랑, 예문관감찰을 거쳐 1440년(세종 22) 통신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과거의 시관이 되어 많은 인재를 등용시켰다. 1447년(세종 29) 집현전부교리, 문종 대에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단종 대에 사헌부집의, 집현전부제학을 지냈다.



김예몽은 조선 전기 광산김씨 충주 입향조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보(敬甫), 시호는 문경(文敬).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김삭(金朔)이다.

부인 창평조씨 사이에 성균관사예를 지낸 아들 김성원이 있다.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에 오르고 호조참의가 되었다. 1460년(세조 6) 인순부윤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동지중추원사, 성균관사성, 강원도관찰사, 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1466년(세조 12) 발영시에 아들 김성원과 함께 급제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1468년(세조 14)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1469년 병으로 사직하고 충주로 낙향하여 얼마 후 별세하였다.




1406(태종 6)∼1469(예종 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보(敬甫). 할아버지는 화(華)이고, 아버지는 사성(司成) 삭(朔)이며, 어머니는 조신우(趙臣佑)의 딸이다.

 

1429년(세종 11) 생원시를 거쳐 143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집현전정자(集賢殿正字)에 제수되었다. 그 뒤 저작랑(著作郎)을 거쳐 감찰에 제수되어, 1440년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과거의 시관이 되어 많은 인재를 등용시켰다.

 

1447년 집현전교리(集賢殿校理)로 승진하고, 문종이 즉위하자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가 되었다. 단종 때에는 집의(執義)·부제학(副提學)을 지내고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에 책록되고 호조참의에 올랐다.

 

그 뒤 1460년(세조 6)에는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서 사은정사(謝恩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사성(司成)이 되었다. 이때에 후학들에 대한 교육에 힘써 자주 시험을 보고 제술이 우수한 자에게는 반드시 포상하여 학문을 권장하였다.

 

그 뒤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가 대사성에 올랐고,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아들 성원(性源)과 함께 급제하여 한때 조정과 재야의 선망을 받았다. 이어 1468년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신병으로 사임하고, 고향인 충주로 낙향하였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시관이 되어 뽑은 인재가 거의 뒷날 조정의 현직을 차지하여 빙감(氷鑑)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성품이 온아하고 청렴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사부(詞賦)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