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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세성리 유항신도비(乷味面 洗星里 柳恒神道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살미면 세성리 유항신도비(乷味面 洗星里 柳恒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1. 1. 09:02

 

세성리로 접어들면 커다란 비석 두기가 눈에 띤다. 유영길과 유항의 신도비이다.

유항(柳恒)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상(汝常), 호는 구봉(九峯).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유세린(柳世麟),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의(柳儀), 아버지는 예조참판를 지낸 유영길(柳永吉)이다. 유항의 신도비는 비석을 바라보며 우측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후손들에 의하여 근간에 세워졌으며 관리상태는 양호하다.




1601년(선조 34) 진사시에 급제하고 1606년 판관 재임 중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사간원정언을 지낸 뒤 1612년(광해군 4) 작은아버지 류영경(柳永慶)에게 추형(推刑)이 가해질 때 일파였다는 죄로 함경도 삼수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 즉위 후 사헌부장령으로 복직되어 1625년(인조 3) 단천군수, 1638년 밀양부사를 지냈다. 1646년 추관(推官)으로 안익신(安益信)의 옥사를 잘 처리하여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1647년 별세했다.



저서로 『구봉집(九峯集)』이 있다.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기단 위에 거북 좌대를 얹고 그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형태의 신도비이다. 월봉신도비와 구봉신도비가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서 있는데 좌측의 신도비가 월봉신도비이다. 비문에는“조선국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춘추관 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 세자좌빈객 오위도총부도총관 행 가선대부 한성부좌윤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전주유공신도비명(朝鮮國贈資憲大夫?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世子左賓客五衛都摠府都摠管? 嘉善大夫漢城府尹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全州?公神道碑銘)”이라 새겼다. 측면에「단군기원4334년 신사(辛巳) 11월 11일 근수(謹竪) 전주인(全州人) 최봉수(崔鳳洙) 근찬(謹撰) 방(傍) 11대손 대수(大秀) 근서(謹書)」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