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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관동 이국헌마애선정비(龍觀洞 李國憲磨崖善政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용관동 이국헌마애선정비(龍觀洞 李國憲磨崖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1. 19. 11:04


이국헌의 선정비는 이국헌이 충주목사로 재직시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냥 넘기기로 한다.

이국헌의 선정비는 현재 노은면 수룡리에 1기 신니면 학성마을에 1기 신니면 용화사에 표지석으로 쓰이는 1기

괴산군 창산리 남창부락에 1기 음성향교선정비군에 1기 그리고 용관동에 마애비가 1기있다.



용관동에 마애비는 많이 알려지지않은 비석으로 관심분야에 있는 사람이나 역사 동호회수준에서 다녀가고 있다.

그나마 마애비를 본뜬 미석을 세워 놓아 장소라도 알수있게 해놓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용관동에서 달천길을 따라 숯골쪽으로 길을 가다보면 정수장옆 자연암벽에 마애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국헌 마애비는 바위면에 목사이공국헌애민선정비(牧使李公國憲愛民善政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1691년(신미)에 마애비를 새겼다.

‘목사이공국헌애민선정비’라고 쓰고, 경오(1690), 신미(1691)라고 새겼다. 그리고 그 앞에는 선정비의 내용을 기록한 새로운 비가 1992년 세워졌다



이국헌은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이여연(李汝淵)이다.
이국헌은 1660년(현종 1) 증광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1년(숙종 7) 금산군수로 재직하며 선치(善治)하여 포상을 받았으며, 1691년(숙종 17) 충주목사로 있으면서 주치(州治)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의창(義倉)인 양진창(揚津倉)을 호조의 승낙을 받아 주치와 금천(金遷)으로 옮겼다. 1693년(현종 19) 목사 윤가적(尹嘉績)과 함께 충주의 아전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혐의자 여섯 사람을 가두고 서울로 압송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원사락 아랫담 뒷산에 있다. 상석과 망주석 1조가 있으며 2004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





이국헌과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는 충주목사를 지낸 엄 찬이 있다.

엄 찬은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의 아들을 곤장으로 때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엄찬은 충주목사에서 체임되고, 이 일로 경연(經筵)에서 논의가 있었는데 이현일(李玄逸)이 엄찬의 치적을 두둔하여 주었으므로 그대로 유임되었다. 1702년(숙종 28) 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엄 찬의 선정비는 달천교 옆에 충주목사를 지낸 목사들의 선정비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