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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읍내리 관찰사김응근불망비(淸安面 邑內里 觀察使金應根不忘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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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읍내리 관찰사김응근불망비(淸安面 邑內里 觀察使金應根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2. 11. 08:27

 

청천면에 산재되여 있던 각종 선정비를 청안면사무소옆 청안동헌 앞에 모아 놓았다 그 비중 하나이다.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김공응근불망비(觀察使金公應根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의 조성시기는 신유년(1861년)오월이다.


 

 

 

 

김응근은 본관은 안동. 자는 계경(), 호는 의석(). 증조할아버지는 승지를 지냈고 좌찬성에 증직된 김제겸()이고, 할아버지는 목사를 지냈고 좌찬성에 증직된 김이경()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을 역임한 후 영의정에 증직된 김명순()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 평산 신씨()로 첨정을 지내고 좌찬성에 증직된 신광온()의 딸이다. 부인은 정부인 용인 이씨()로 영의정을 지낸 이의현()의 증손녀이고 첨추밀원사 이재순()의 딸이다. 아들은 조선 말 영의정, 좌의정,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한 김병시()이다.

동생은 규장각 제학을 지낸 김흥근()이다.

 

김응근()[1793~1863]은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1822년(순조 22) 익위사세마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사어()를 거쳐 공조 좌랑 및 정랑, 사복시 주부, 충훈부의 도사, 경모궁() 사직서령, 종친부 전부, 제용감 판관(), 선혜랑, 군자감정()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의흥 현감, 임천 군수, 평양부 서윤, 서흥 부사, 수원부 판관, 부평 부사, 청주 목사를 거쳤다. 1855년(철종 6) 가선()이 되고, 1857년 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858년 가의()로 올랐고, 1859년 자헌()이 되었다. 1860년 공조 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냈고, 1862년(철종 13) 정헌()에 올랐다. 1863년(철종 14) 7월 12일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글씨를 잘 써서 평양의 의열사비를 썼다. 충청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1859년 공주목[현 공주시]의 읍지인 『공산지()』 편찬에 간여하였다.

『공산지』 제2책의 첫머리에 김응근의 서문이 실려 있다.  김응근[金鷹根]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