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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면 백양리 이인서행적비(甘勿面 伯陽里 李麟瑞行績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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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면 백양리 이인서행적비(甘勿面 伯陽里 李麟瑞行績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2. 12. 14:10


감물면 하백양리에 연안이씨들의 세거지비와 더불어 연안이씨 가문에서 배출된 효자,효열부와 나라에 충성한 분들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인 이인서의 행적비이다 . 

李麟瑞(이인서:1554~1628)는 이석형의 증손으로 호는 청계당(聽溪堂)다.
임진왜란때 싸운 공으로 의흥현감(義興縣監)이 되었으나, 광해군때 정치가 문란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비 앞면에 ‘贈司憲府執義延安李公諱麟瑞聽溪堂行績碑(증사헌부집의연안이공휘인서청계당행적비)라고 쓰여 있다.

청계당 이인서(聽溪堂 李麟瑞)는 임진왜란때 조부인 이효장이 개척한 고향인 백양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다.

행적비 뒤로는 이인서의 호를 딴 청계당이 연안이씨의 사당으로 자리하고 있다.행적비는 1995년에 건립하였다.




李麟瑞(1554∼1628)는 이효장의 손자이며, 무덤은 부인(金海金氏)과의 합장묘이다.

문무인석(2쌍), 상석, 망주석, 묘비를 갖춘 동향의 무덤이다.무덤은 가까운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대상동에 위치하고 있다.

두사충(杜思忠)이 소점한 자리로 알려져 있으며, 저헌 이석형 선생의 4대손인 청계당(聽溪堂) 이인서(李麟瑞)묘는 박달산을 조산(祖山)으로 하는 回龍顧祖形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裁穴法에서 탄토부침(呑吐浮沈)을 공부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이인서(李麟瑞) 1554(명종 9)~1629(인조 7)는 조선 선조 때의 공신으로 자는 응인, 호는 청계당(聽溪堂), 본관은 연안이다. 저헌 이석형의 현손이다.

묘갈명에 의병장의 활동을 기술해놓았다. “섬나라 오랑캐의 난을 당하여 동지들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근왕병으로 활동하기 위하여 임금에게 가려고 했으나 길이 막혔다. 이에 험한 요소에 매복하여 적들의 목을 벤 것이 많다. 도 사람에 알리지 않아 아는 사람이 더욱 치하하고 탄복하였다.” 왜적을 목 베어 죽인 것이 많아도 자랑하거나 알리지 않아도 자연 그 공적이 알려졌다. 후일에 대신들이 조정에 추천하여 별좌 의금부도사 내섬시주부에 연이어 임명되었다. 이어서 곡성과 의홍의 두곳의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이어서 군자감 판관이 되었으나 선조임금의 뒤를 이은 광해군의 패륜행위를 보며 벼슬을 사양하고 삶의 터전이 된 백양리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았다.
충북 중북부의 대표적인 명산중의 하나인 박달산과 월악산 아래인 신당리 호계의 시내 위에 작은 집을 짓고서 청계당(聽溪堂)이라 현판을 달았다. 후에 사헌부 집의에추증되었다. 묘소는 감물면 이담리에 있다. 감물면 백양리에서는 의롭고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호를 따서 청계당회관 건물과 행적비를 세웠다.【참고문헌】 『괴산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