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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면 두천리 충장사(七星面 杜川里 忠莊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칠성면 두천리 충장사(七星面 杜川里 忠莊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2. 15. 09:21

 

괴산시내를 지나 칠성면 쪽으로 길을 달리다 보면 괴강 다리를 건너며 제법 넒은 평야지대가 펼쳐진다.두천리는 전형적인 작은 농촌마을이다. 달천이 마을 앞을 돌아 흘러서 마치 내로 막은 것처럼 되었으므로 마그내 또는 두천이라 한데서 두천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거리담, 바깥막으내, 번징이 등이 있다. 거리담은 도로변에 위치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바깥막으내는 두천의 바깥에 있는 마을이다. 번징이는 막으내 서쪽 괴강변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넓고 기름진 땅이므로 번성할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충장사(忠莊祠)라 이름하는 조선시대 무신인 성대훈을 모신 사당이다.두천1리에 길가에 관리사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잘 보이던 사당이 보이질 않는다.어디 다른 곳으로 옮겨졌나 하는 생각을 하고 지나치곤 했었는데 이번 길에 다시 보니 새로 중수하고 있었다.

 

 

 

충장사(忠莊祠)는 괴산군 칠성면 두천리에 있는 사당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창산군() 성대훈(, 1572~1636)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1636년(인조 14) 건립되었는데, 1910년 칠성면 송동리로 옮겼다가 1980년 다시 두천리로 옮겨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목조기와집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둘레에는 일각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러놓았다. 아래 사진은 2011년 7월에 촬영한 충장사(忠莊祠)의 근경이다.

 

 

 

관리사가 사당인 충장사옆에 자리하고 있다.충장사 앞에는 성대훈의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두천리와 송동리는 창녕성씨가 대성이였나 보다.

 

 

 

성대훈은 자 중집()이고, 본관은 창녕()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고 1623년 인조반정 후 평양별장()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의 반란군을 무찔러 진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창산군에 봉해졌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도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재물을 탐내 유배되었다가 1634년 별장()이 되었으나 강화도의 위리안치소()에 잡물을 들여 놓아 다시 충주에 유배되었다. 세상을 떠난 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