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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문강리 문산마을(乷味面 文江里 文山마을) 본문
문강리는 살미면 세성리에서 문강온천쪽으로 있는 문바우 고개를 넘으면서 처음만나는 마을이다.
살미면 행정리동의 하나로, 자연마을은 문산, 붉은바위로 이루어 졌으며, 동북쪽은 문산재를 넘어 세성리와 접하고, 서쪽은 19번 국도를 건너 괴산군 장연면 강진과 접하며, 동남쪽은 수안보면 수회리와 접하고, 북서쪽은 붉은바위를지나 토계리와 접하고 있다.문산리는 양씨(400여년 세거), 박씨(200여년 세거), 백씨,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몇 가구씩만 거주하고 있다. 정문거리에 양여공효자각이 있고 그 옆의 수령 430년의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듯 온갖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있다. 한편 독립유공자 최봉기선생의 묘소도 이 마을에 있어 명실공히 문산리는 충효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또한‘문산건강증진센터’에는 문산보건진료소가 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문산리는 문바위 전설과 명마(名馬)가 태어났다는 명마지곡 전설 등 많은전설이 서려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행사의 하나인 동제는 정월 보름날 산제당에서 지낸다. 제의 순서는 강신을 한 후 제관이 헌작하고 축관이 축을 읽고난 후 제관이 재배하고, 공양주가 아헌을, 축관이 종헌을 하고 참가자 전체가 재배한 후 대동소지를 올린다. 산제당에서 제사가 끝나면 마을로내려와 정려문 앞에 통포, 제주를 올리고 마을 앞 개울 다리 밑에 통포, 제주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각 가정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문산마을의 대동계는 매년 12월 중에 날짜를 정하여 개최하며 이장 선출을 비롯한 마을의 대소사를 협의 의결하는 마을 총회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동계의 기금은 현금이 약 2백만원 정도 적립되어 있으며 부동산으로 마을의 논이 908평이 있다. 마을 이장에게 옛날에는 가구당 쌀 1말씩을 거출하여 사례비로 지급하였으나 현재는 이를 폐지하고 마을의 논 908평을 이장이 경작하도록 하고 있다.논농사를 위주로 특용작물로 전에는 오이를 많이 재배하였는데 최근에는 배추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을 대표하는 두 마을 문산동과 강진동의 첫 글자를 따서 문강리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연풍군 수회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산동과 강진동을 합쳐 문강리가 되었고 괴산군 상모면에 속하게 되었다. 1963년 1월1일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고, 1989년에는 문강리가 다시 살미면에 편입되었다. 그때부터 문강리는 중원군 살미면에 속했다가 시군통합으로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가 되었다.
북쪽으로는 문산고개를 넘어 세성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붉은바위를 경계로 토계리와 만난다. 남서쪽으로 석문천에 나있는 문강교를 경계로 장연면 광진리와 만난다. 동남쪽으로는 돌고개를 넘어 수회리 신원과 통한다. 북서쪽으로 높고 남쪽 석문천변은 저지대를 이룬다.
문산마을에는 문산마을 보호수아래 양여공 효자각이 자리하고 있다. 양여공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경지(敬之), 호는 유정(柳亭). 고려 통합삼한대장군(統合三韓大將軍) 양능길(梁能吉)의 1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무(梁茂)이고, 할아버지는 양환(梁煥), 아버지는 현령 양숙(梁肅)이다. 외할아버지는 윤정신(尹挺莘), 장인은 민사정(閔思正)이다.
1396년(태조 4) 생원시에 합격하고, 1405년(태종 5) 28세의 나이로 식년시 문과에 병과 5위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다. 문장에 능통하여 중시(重試) 때 이조정랑 김자(金赭)가 양여공의 시권(試券)을 빼앗아 이름을 고쳐 써서 장원 급제했다고 한다. 예문관검열, 승정원주서, 성균관주부를 역임하고, 1411년(태종 11) 사간원우정언지제교(司諫院右正言知製敎)를 거쳐 이듬해 황주판관이 되었으며, 이조좌랑, 성균관직강지제교(成均館直講知製敎), 예조정랑을 지냈다. 1418년(세종 즉위년) 병조정랑으로 있으면서 병사(兵事)를 상왕인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병조판서 박습 등과 함안으로 장배(杖配)되었다. 1431년 충주에 있을 때, 양여공이 유연생(柳衍生)에게서 기생 예성화(芮城花)를 빼앗자, 원한을 품은 유연생이 양여공이 반역을 음모하였다고 거짓으로 고발하여 사형당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문산리와 강진리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문산리는 문산, 붉은 바위, 정문 거리, 주막거리의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문산리에는 양씨와 박씨가 많이 산다.
강진리는 강진, 동녘, 주막거리, 아홉담, 귓댕이라는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현재 유황 온천인 문강온천이 자리 잡고 있다. 유황 온천이란 온천수에 유황성분이 1mg/㎏ 이상 들어있는 경우를 말한다. 문강유황온천은 199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해 현재는 문강유황온천호텔과 아이템플 연수원이 들어서 있다. 서쪽으로 국도 19호선이 지나간다.
1999년 7월 7일 문강온천지구는 국토이용계획 변경 승인에 이어 관광지 조성 기본계획 수립과 관광지 지정 및 조성계획 승인 신청을 추진 중에 있다. 2005년 3월 6일 조합원 200여 명으로 구성된 문강온천지주조합이 설립되었다. 문강온천지주조합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5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웰빙·휴양형 온천관광지를 조성 중에 있다.
문산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문산마을 표지석이다.
표지석옆에 서있는 조형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석의 이수부분을 받침석으로 사용하고 있는것을 알수있다.
문산마을 자랑비는 총 높이 245㎝ (최대 가로 168㎝, 세로 133㎝, 높이 25㎝의자연석 위에 가로 109㎝, 세로 100㎝, 높이70㎝의 자연석을 얹고 전면에 무궁화를 조각하였고 뒷면에 오석을 붙이고“문산팔경”비문을 새겼다. 그 위에 최대 너비 190㎝, 높이150㎝, 두께 86㎝의 자연석을 얹고 전면에「문산마을」이라고 새겼다).
“文山八景(문산팔경)”
淡岩明月(담암명월) 담바우 장등에 밝은 달 떠오르고
新谷閑雲(신곡한운) 새골에는 안개 구름이 잔잔하고
龍楸細雨(용추세우) 용추골에는 가랑비가 자주 오고
馬洑淸風(마보청풍) 마우보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纓臺漁笛(영대어적) 탁영대에는 고기잡고 피리불고
石峴樵歌(석현초가) 돌고개는 나무꾼들이 소리하고
王山落照(왕산낙조) 왕담산엔 저문 햇살이 떨어지고
陳垈暮烟(진대모연) 진대동내는 저녁 연기가 나온다
丁亥(정해) 1947年 成均館(성균관) 秘書院(비서원)
敎官(교관) 安泳(안영중) 號(호) 巖齋(암재)先生詩 西紀2000年4月日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에 있는 밀양박씨의 사당이다
근간에 세워서 깨끗하니 잘 관리되고 있다. 밀양박씨충청감사공파충주문중에사 세운 사당인 숭례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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