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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청용리 향나무(淸安面 淸龍里 香나무)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안면 청용리 향나무(淸安面 淸龍里 香나무)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3. 07:47

 

청안면 청용3리 회룡동에 있는 향나무입니다. 청용3리(淸龍3里)는 매박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청당(淸塘)과 회룡(回龍)을 합하여 행정구역을 편성했습니다. 향나무는 겨울에 폭설피해로 가지등이 부러진 뒤 군에서 자금과 자재를 지원하여 나무를 보강하였다고 마을주민들의 말이 있습니다. 확실한 수령은 알수가 없지만 회룡골에 광산김씨가 세거하면서 같은 세월을 지내 온 듯 합니다.

 

 

향나무가 있는 연못은 마을 뒷산에 있는 김질간의 묘소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혼자만의 생각입니다.풍수지리에서의 배산임수(背山臨水)에서의 연못이 임수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마을 뒷산에 있는 김질간(金質幹)의 묘에서 바라다 보이는 향나무의 사진입니다.

 

김질간은 본관은 광산(). 자는 문오(), 호는 쌍매(). 할아버지는 광우()이고, 아버지는 성균박사 응구()이며, 어머니는 노경기()의 딸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에 임명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 등 내외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지평(), 1612년 병조정랑에 승진하였다. 같은 해부터 장령()·사간·집의()·교리()·부교리 등 삼사의 관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대북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관철에 앞장섰다. 1613년 겸보덕(), 1616년 보덕이 되었으며 직강()으로 『선조실록』 편찬의 기주관()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선조의 옥책()을 올릴 때 참여한 공로로 당상관에 승진하여, 1618년 여러 차례 승지에 오르고 판결사를 지내다가, 1621년 대사간·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죽었다. 김질간[金質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회룡동은 광산김씨의집성촌으로서 정동향으로 마을이 있어 속칭 양지마을 이라고도 부릅니다.옛날 청안현이 청당리에 현이 있었는데 대홍수로 태종3년에 읍내리로  이현(移懸)하였다는 것이 청안향교 명륜당 현판에 각인되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