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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면 광덕리 김용식공적비(道安面 光德里 金容式功德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도안면 광덕리 김용식공적비(道安面 光德里 金容式功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20. 06:08

 

도안면 광덕2리에 위치하고 있는 경주인 월곡 김용식(月谷 金容式)의 공덕비이다.김용식은 초대 면의원을 지냈으며 도로부터 부락도로 오마장(2키로미터)을 국고금과 자치금을 합하여 지방도로를 개설하는데 많은 공이 있으며 광덕소류지추진위원장으로 광덕소류지를 개설하는 등 부락을 위해 헌신 노력하였으며 야학을 실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한 김용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 4월에 이 비를 세웠다. 

 

 

 

비석이 있는 광덕2리는 경주김씨의 집성촌이다. 비석은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월곡김공용식공적비(月谷金公容功績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1975년이다. 비석의 뒷면에는 김용식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으며 모산부락 북쪽에 있었던 광덕소류지는 1965년에 시설했으나 현재는 증평 쓰레기매립장이 되었다.

 

 

 

광덕2리에는 경주김씨의 위토(位土)가 있으며 논 2,000평을 합하여 모두 4,000평정도가 있다. 위토를 경작하는 대가로 시제의 비용을 부담하고, 벌초를 담당한다.

 

위토(位土)라 함은 문중의 제사 또는 이와 관련된 일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마련된 토지를 말한다.

사용목적에 따라 제전()과 묘전()으로 나눌 수 있다. 제전은 기제사를 위한 것으로, 신주()의 4대손이 모두 사망하여 묘사()에 이전될 때까지는 적장손()이 관리하고, 그후에는 묘제() 및 묘지관리를 위한 비용을 조달하는 묘전이 되어 종가()에서 관리하였다. 묘전은 자손들이 각자 갹출하거나 부유한 동족원이 재산을 종중에 기부한 것으로써 마련하여, 종가 단독 소유로 하거나 문중 공동소유로 하였다. 문서를 만들고 약조를 맺어 개인이 팔 수 없도록 하였다. 제전은 적장손이 주관하여 경작하였고, 묘전은 묘지기 또는 노비를 시켜 경작하거나 남에게 빌려 주고 그 대신 지대()를 받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 이래 주자가례()의 보급으로 상례()·제례()를 중요하게 여기고, 문중조직·동족촌락이 발달하는 추세와 함께 제사 및 묘지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토지의 마련도 성행되었던 듯하다. 시기가 뒤로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승중자손()이 임의로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약()을 맺어 공동소유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으로 종중 공동소유로 되어 있던 토지가 종중의 대표자 한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된 예가 많았고, 이를 이용하여 종중의 주도권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처분하여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 뒤 문중조직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위토도 의미를 상실해 갔다

 

 

 

 

 

도안면 지명유래에 의하면 광덕2리 마을의 형상이 바뀐 시기는 70 ~ 80년대의 새마을사업 때이다. 종래 지모골ㆍ노루골에서 모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대신하여 일제강점기 시기에 마차와 리어카가 다닐 수 있도록 폭 2~3m의 도로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도로가 협소하고 포장되어 있지 않아 통행에 어려움을 겪던 중 새마을사업 보조금으로 현재 농공단지 사원아파트 부지를 매입하여 확장하였고, 80년대 초에 다시 500만원 어치의 시멘트를 지급받아 주덕 레미콘으로 시멘트 포장을 하였다. 도로 개설로 36번 국도와 이어지는 통행로가 완성되어 마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때부터 경운기와 같은 농기계가 본격적으로 이용되었다. 새마을운동은 도로 개설 이외에도 마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마을의 대부분이 초가집에서 슬레트 지붕으로 바뀌었다.10년 전에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대신하여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완성되었고, 이때에 하모산의 주요 식수원의 하나인 우물이 매립되었다. 마을 앞 경작지의 경지 정리를 겸해, 경지 정리 이전 마을쪽으로 휘어 수해의 피해을 입히곤 했던 하천을 곧게 바로 잡았다.현재 모산 마을은 상모산과 하모산으로 나뉘어진 것처럼 경로당을 겸하는 마을 회관이 두 곳에 모두 있다. 두 곳의 경로당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등록되어 있으나, 대부분 남녀 구분없이 상 ㆍ하모산의 주민들이 각기 그곳의 경로당을 이용하고 있다.


경주김씨의 위토(位土)는 논 2,000평을 합하여 모두 4,000평정도가 있다. 위토를 경작하는 대가로 시제의 비용을 부담하고, 벌초를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