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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 남하리 하마석(曾坪邑 南下里 下馬石)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읍 남하리 하마석(曾坪邑 南下里 下馬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20. 08:35


하마석은 주명흠묘소(周命欽墓所)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주명흠 묘소는 웃말’ 능선에 조성된 초계주씨(草溪周氏) 묘역 안에 있다.

명흠(1600∼1693)은 조선시대 공주판관을 지냈다. 묘에는 묘비와 문인석 1조, 상석 등이 있고 그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묘역 입구에는 가로 97cmㆍ높이 50cmㆍ두께 60cm의 하마석이 있다. 1702년에 세운 하마석은 2007년 10월 15일에 증평군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도로공사로 인해 현재의 위치에 있는 하마석에는 하마석(下馬石)이란 글씨가 음각되여 있다.


주명흠은 서기 1600년 1월 8일에 출생했다. 공은 성장하면서 기력이 남보다 뛰어나 거인 장부가 되어 인조 때 무과에 급제했다. 1624년에 이괄의 난을 만나 임금님을 모시고 공주로 피난간 공로로 정난공신이 되고 공주판관에 특제됐으며, 의주의 방위를 담당하면서 성을 쌓은 공적이 있었다. 1627년에 정묘호란을 만나 마포싸움에 출전하여 전공이 있어, 뒤에 백마산성에서 도원수수성장을 지냈다. 1636년에 병자호란을 만나 검천싸움에 출전하였는데 크게 부상을 입고서 시체더미 속에 이틀 밤낮동안 묻혀 왼쪽 발과 장지가 얼어 떨어져 나갔다.

 

살아 돌아오니 조정에서는 공을 크게 기용하고자 포상하고 책훈하려 했으나 노친을 봉양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양하고 귀향하니 사람들은 모두 충효의 행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서기 1693년 7월 20일 94세로 생을 마쳤다. 주명흠의 묘와 묘에는 묘비와 문인석 1조, 상석 등이 있고 그 후손들의 묘소가 있으면 묘역 입구에는 가로97 ☓ 높이50 ☓ 두께60㎝의 하마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