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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 남하리 주명흠묘소(曾坪邑 南下里 周命欽墓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읍 남하리 주명흠묘소(曾坪邑 南下里 周命欽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23. 11:04

 

증평읍 남하3리 염실마을에 있는 초계주씨들의 묘역이 있다.이 묘역은 초계주씨들의 묘역인데 공주판관을 지낸 초계주씨 20세손 주명흠의 묘지도 이곳에 있다.주명흠은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왕이 공주로 피난을 갈 때 어가(御駕)를 호휘하여 정난공신이 되였으며 임금의 특명으로 공주판관을 지냈다.

 

 

 

초계인 주명흠은 서기 1600년 1월 8일에 출생했다. 공은 성장하면서 기력이 남보다 뛰어나 거인 장부가 되어 인조 때 무과에 급제했다. 1624년에 이괄의 난을 만나 임금님을 모시고 공주로 피난간 공로로 정난공신이 되고 공주판관에 특제됐으며, 의주의 방위를 담당하면서 성을 쌓은 공적이 있었다. 1627년에 정묘호란을 만나 마포싸움에 출전하여 전공이 있어, 뒤에 백마산성에서 도원수수성장을 지냈다. 1636년에 병자호란을 만나 검천싸움에 출전하였는데 크게 부상을 입고서 시체더미 속에 이틀 밤낮동안 묻혀 왼쪽 발과 장지가 얼어 떨어져 나갔다.살아 돌아오니 조정에서는 공을 크게 기용하고자 포상하고 책훈하려 했으나 노친을 봉양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양하고 귀향하니 사람들은 모두 충효의 행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서기 1693년 7월 20일 94세로 생을 마쳤다. 주명흠의 묘와 묘에는 묘비와 문인석 1조, 상석 등이 있고 그 후손들의 묘소가 있으면 묘역 입구에는 가로97 ☓ 높이50 ☓ 두께60㎝의 하마석이 있다.[증평군홈피]

 

 

 

 

 

 

 

주명흠의 묘역에는 1702년에 세운 묘비및 문익석1쌍이 있고 1986년에 새로 조성하여 세운 묘비와 문인석 1쌍과 상석이 자리하고 있다.기존에 세웠던 문인석은 70센치정도의 작은 크기이나 단아하고 정교하며 금관조복을 나타내는 18세기초의 문인석의 특징을 정교하게 나타내고 있다.묘역의 위로는 충경사(忠敬祠)라는 현판을 걸고 있는 재실이 자리하고 있다.충경사는 시멘블럭조의 알미늄으로 문을 달고 있으며 후손들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다.

 

 

 

 

 

 

 

 

 

 

 

동자석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