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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문산리 양여공효자각(乷味面 文山里 梁汝恭孝子閣)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살미면 문산리 양여공효자각(乷味面 文山里 梁汝恭孝子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27. 06:07

양여공의 효자각은 살미면 문강리 문산 405-2에 주소를 두고있으며 시나무로 지정된 느티나무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충주시나무 11호로 1982년 11월 11일에 지정관리되고 있으며 시나무 지정당시 수령은 약 410년정도 된 느티나무이다

나무의 높이는 약 17미터이며 둘레는 420센티정도이다. 수세는 강한편이다. 


조선 세종때 병조좌랑을 지낸 양여공(1378~1431)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이 정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구획되어 전면에만 홍전(紅箭)을 세우고 정려문편액을 걸었는데 그 편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자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겸 홍문관사예문관사령경연사성균관사춘추관사관상감행통덕랑사간원우정언지제교양여공지려 명정려(孝子贈大匡輔國崇綠大夫議政府兼議政兼弘文館事藝文館事領經筵事成均館事春秋館事觀象監行通德郞司諫院右正言知製敎梁汝恭之閭命旌閭)”구조는 자연석으로 1단 축조한기단 상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와 창방을 생략하고있는 간결한 납도리 삼량(三樑)집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당초 엄정면에 있었던 것을 양씨의 후손들이 문강리 문산 마을에 다수 거주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준공한 것이다.
양여공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대장군 양능길(梁能吉)의 15대손이며 현령 양숙(梁肅)의 아들이다. 자는 경지(敬之)이며 호는 유정(?亭)이라 하였고, 본관은 蘂城(충주)이다. 1396년(태조 4) 생원시에 합격하고 1405(태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다. 문장에 능통하여 중시(重試)때 이조정랑 김서가 그의 시권을 빼앗아 이름을 고쳐 제출하여 장원을 했다고 한다.
예문관검열, 승정원 주서, 성균관 주부를 역임하고, 태종 11년(1414)에 사간원 우정언 지제교가 되고, 이듬해에 황주판관이 되고, 이조좌랑·성균관 직강지제교·예조정랑을 거쳤다.세조 즉위년(1418)에 병조정랑으로 있으면서 병사를 상왕인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병조판서 박습(朴習) 등과 함안으로 장배되었다. 그 후 충주에 있을 때 기생 예성화를 빼앗아 원한을 품은 류연생의 거짓 고발에 의해 반역을 음모했다는 죄로 사형되었다.
시와 글에 능했으며 지극한 효행으로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영조 24년(1748)에 세우고 순조 9년(1808)에 중건한 효자정문이 문강리 문산마을로 이전되어 위치한다.
양여공의 묘소는 엄정면 신만리 산 58에 있으며, 세종 17(1435)에 대제학 윤회(尹淮)가 찬한 묘비가 있었으나 중간에 없어진 것을 1877년 후손들이 다시 만들어 세웠다. 묘비에는 몰년(沒年)이 세종 15년(1433)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