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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읍 묵방리 삼죽당선생신도비(內秀邑 墨坊里 三竹堂先生神道碑)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내수읍 묵방리 삼죽당선생신도비(內秀邑 墨坊里 三竹堂先生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6. 5. 06:50

이홍연은 1604(선조 37)∼1683(숙종 9). 조선 후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한산(). 자는 정백()·이정(), 호는 삼죽(). 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덕수()이며, 어머니는 조씨()로 수륜()의 딸이다. 조희일()·정홍명()의 문인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 1636년 의금부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퇴, 뒤에 세마()를 거쳐 시직()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간이 되어 조의()를 뿌리치고 조석윤()과 함께 김자점()을 탄핵하여 갑자기 귀양보내게 하였다.

효종 즉위 후 좌승지·황해감사·대사간·예조참의·병조참의·형조참의 등을 두루 거쳐, 호조참판·도승지에 올랐다.

이 해 김수항()을 변호하다가 삭직, 이듬해 다시 서용되었고, 1680년 의금부당상관으로 경신대출척의 옥사를 다스려 허목() 등을 숙청하였다. 그 뒤 다시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를 지내고 좌참찬으로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 신도비는 삼죽당 이홍연의 신도비로 신도비 개수연혁비의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숙종9년 1683년에 서울에서 서거(逝去) 초장(初葬)을 북이면 화죽리(北二面 花竹里)에 모셨다가 그 후 연기군 내판 대곡(燕岐郡 內板 大谷)으로 이장(移葬)하였는데 수맥지환(水脈之患)이 있어서 영조 19년 1743년에 강내면 월탄리(江內面 月灘里)로 이장(移葬)할때 신도비(神道碑)를 운반(運搬)중에 금강(金江)에 누실(漏失)하였다고 전함. 그 후 260여년이 지난 2009년에 묘소를 묵방리로 이전시 신도비를 개수하였으며 자원은 이유당공 종회의 돈으로 충당하였다 2009년에 개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