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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삼청리 삼청리석불(周德邑 三淸里 三淸里石佛) 본문
삼청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삼방과 상청의 이름을 한자식 따서 삼청리라 하였다. 삼청리는 현재 청양, 미락, 능촌, 묵동, 삼방의 5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청양은 청량골이라고 부르며 지도상에는 삼청농공단지 지역, 양지말, 평지말로 이루어져 있다. 삼청농공단지는 36번 국도로 인해 청양과는 구분되는 느낌이 들며, 양지말은 하나의 마을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어 평지말이 중심마을을 이루고 있다. 미락은 평지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미락골이라고 부른다. 미락골에 속하는 마을로는 속담, 열무개, 절골, 통미가 있다.
능촌은 주덕에서 소이로 이어지는 지방도의 오른쪽에 있는 마을로 보통 능말이라부른다. 옛날부터 능터가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능촌에는 김자점과 관련된 전설이 있으나 믿을 수 없다. 능촌의 자연 마을로는 배나무골, 부엉골, 새말, 성말이 있다. 묵동은 능촌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먹벅골이라고 부른다. 옛날 이곳에 사는 홍모씨가 먹을 만들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묵동에 딸린 마을로는 갈골이 있다. 이곳 묵동의 동쪽 언덕에는 단군전이 있다.삼방은 묵동의 서남쪽으로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삼방이라는 이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은거하고 있는 배극렴을 세 번이나 찾아왔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러나 배극렴이 은거한 곳이 주덕 삼방인지 아니면 불정면 삼방리인지는 좀 더 연구를 해보아야 하겠다. 옥녀봉과 무네미 고개가 마을 뒤편으로 있다.
주덕읍 삼청리에 있는 삼청리 석불입니다. 삼청리 석불은 진입하기도 불편한것도 있지만 많은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석불입니다.
발견시 불두가 없이 발견이 되였는데 그 후 불두가 후보되였습니다. 불두는 아주 조잡하게 만들어 졌는데 차라리 없는 편이 낮겠다 싶습니다.
불두는 불신에 비헤 비례도 맞지 않으며 시멘트로 조잡하게 만들고 머리에 있는 관은 철근등이 노출이 되여 있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은 없지만 가끔씩 공양은 받는지 석불앞에는 촛대등 제기가 자리하고 있다.
단군전 뒤로 200m 정도 올라가면 서쪽 가섭산 방향으로 서 있는 미륵 석불을 볼 수 있다. 미륵석불은 1970년 대 청주로 이사 간 원씨 꿈에 현몽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땅을 파고 발견하여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군전 뒤로 복숭아 밭이 있는데 복숭아밭을 바라보며 과수원 오른쪽 끝에 침엽수림 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륵석불은 높이 160㎝, 둘에 160㎝로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다. 미륵석불은 기단석, 머리(佛頭), 머리 갓은 시멘트로 1970년 대 세울때 만든 것이고, 몸통 부분은 땅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미륵석불의 뒷부분은 특별히 조각된 흔적이 없고 거칠게 다듬어 놓은 흔적만 보입니다, 앞부분은 통견으로 11개의 줄이나 있으며 오른손은 우측 허벅지 다리 옆에다섯 손가락을 펴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이배꼽 밑에서 다섯 손가락을 펴고 있다. 가슴부분은 블록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지방에서 유행한 미륵 신앙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의 손을 허벅지에 딱 붙인것이 잘 훈련된 훈련병의 차렷모습처럼 보입니다.
석불이 언제 조성되였는지는 정확히 알수가 없으며 석불의 발견지점이 원래 이 곳이라면 이 근처 어딘기에 절터가 있어야 할거고 절터의 흔적이 없다면 미륵신앙으로 동네 주민들의 치성을 받았던 미륵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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