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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대곡리 전주이씨정려(周德邑 大谷里 全州李氏旌閭) 본문
맹골마을은 매화자리가 변하여서 맹골이 되었다가 한자 표기로 옮기면서 오늘날의 맹동 마을이 됐다 한다.
대곡리 맹동 마을에 효부이씨의 정려문이 있다. 효부 이씨부인은 정수동의 아내로 효성이 지극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시아버지가 학질에 걸려 삼년간이나 앓자 기력이 쇠진하여 위독한 지경에 빠졌다. 이에 이씨부인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를 물으니 시아버지가 자라를 먹으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때는 엄동설한인지라 자라를 구할 방도가 없었다. 이씨부인은 하늘에 자라를 얻게 해달라고 기원을 했다.
기도를 한 후 앞 냇가로 나가니 자라가 있어 이를 가져다 고아드리니 차도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는 이씨부인의 효성에 하늘이 감복하여 자라를 내려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시아버지가 위독하자 단지를 하여 명을 연장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전주리씨 효부문(全州李氏孝婦門)는 조선(朝鮮) 순조(純祖) 3년(1803)에 명정(銘旌)된 정려(旌閭)로서 효부(孝婦) 전주리씨(全州李氏)의 아름다운 효행(孝行)을 찬양하기 위하여 건립된 정려(旌閭)이다.
마을 회관 바로 옆에 느티나무 보호수와 같이 위치하고 있는데, 맹동 마을로 들어서는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하여 보호수와 어우러진 자연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내부에는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효부(孝婦) 비(碑)를 안치하고 있다.정수동(鄭秀棟)의 처(妻)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효부(孝婦)로 이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했다한다. 오천 정영택이 지은 정문중창기에 의하면 기미년 정월에 시모(媤母)께서 돌아가시자 마을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의심하므로 그 시부(媤父) 또한 집 뒤의 서당에 은거케 하였으나 발병(發病)하여 이씨(李氏)는 새벽 일찍 약을 다려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으며 날이 새면 시모범연에 돌아와 진심으로 서럽게 곡(哭)하며 절하고 밤이 깊어서야 귀가하며 상복을 벗지 않았다한다. 또한 제수(祭需)를 마련할 때 울안에 샘을 따로 파 놓고 사용했다한다. 약주(藥酒)를 좋아하는 시부를 위해 항상 좋은 술을 빚어놓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새벽닭이 울면 그 술을 데워 드리는 일을 하루라도 거르지 않았다한다.
어느 해, 하루는 시부께서 학질(瘧疾)에 걸려 누워계시자 엄동설한에 자라탕을 해드리고자 얼음을 깨고 이곳저곳을 뒤지는데 그 효성(孝誠)의 지극함에 천우신조(天佑神助)함인지 큰 자라를 잡아 시부님의 구미(口味)를 돋우어 드린 적도 있다한다. 그러나 병환(病患)이 점점 더하여서 급기야 혼절(昏絶)하게 되자 남편 정수동(鄭秀棟)이 손가락을 베고, 이씨(李氏)도 따라서 단지(斷指)하여 시부의 입에 흘려 넣자 다시 소생하여 며칠간을 지탱하였으나 천명(天命)이 다했음인지 별세(別世)하고 말았다 한다.
이러한 연유로 영조 19년(1743)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한다.이보다 앞서 숙종조(壬辰年)에 처무사인이 만성에게 수암 권상하선생이 지은 정문이 상달된바 있으며 이 사실이 여람에도 기록되어있다 한다
전체 배치는 마을회관 옆 보호수와 나란히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의 비교적 높지 않은 낮은 산의 경사를 이루는 지형에 견치돌쌓기로 단을 만들어 효부문을 앉히고 있다.경사를 이루므로 2단의 기단을 만들고 진입은 계단을 통하여 오르게 되어있다. 계단을 오르면 콘크리트 담장을 두르고 그 가운데 정려(旌閭)가 자리하고 있다. 정려(旌閭)는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시멘트 마감한 바닥위에 160mm 높이의 화강암을 다듬은 원형 주초를 올리고 있다. 벽체는 초석 바로 위 기둥에 하인방을 결구하고 기둥 2/3 위에 중인방을 설치하여 사면으로 120mm 간격으로 홍살을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개방된 구조는 정려를 통해 충효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개방되면서 보호와 기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주두 하부에는 주간에 창방을 결구하고 있다. 기둥의 공포는 익공계 공포로, 초익공은 앙서이고, 이익공은 수서로 된 이익공으로 되어있다. 주간 창방 위에는 6기의 소로를 설치하고 장혀를 받치고 있다. 주간의 소로는 중앙에는 놓지않고 양쪽에서 3기씩을 배치하고 있다. 서까래, 보머리 부리에는 육매화점이 있으며,서까래에는 웅화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초 주위에도 육매화점의 직휘띠를 들르고 있다.
가구는 납도리 삼량가이고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정려 내부에는 마룻대하부의 장혀에 <효부 학생 정수동 처 유인 전주이씨지문 숭정후재 계해삼월 일 명하재갈(孝婦 學生鄭秀棟妻孺人全州李氏之門 崇禎後再 癸亥三月 日 命下齋楬)>이라고 쓴 정려(旌閭) 편액을 결구하여 매달고 있다. 또한 후면의 도리에는 <효부 이씨 정려문 중수기(孝婦李氏旌閭門重修記)>가 있다.특히 이곳 맹동 마을은 돌이 아주 귀하다한다. 그래서 보호수와 정려문(旌閭門) 주변의 기단을 쌓을 때 집집마다 20개씩의 돌덩이를 추렴하여 쌓았다는 조금은 특이한 전설을 마을 어른들은 들려준다.[주덕읍지]
보호수는 지정번호 충주 제1호로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당산목으로 섬기고 있다.
지정 년 월 일은 1982년 11월 11일이며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산 19번지, 맹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수령은 지정당시 360년이며 수고, 가슴둘레, 수관 폭 19m, 450cm, 26m이며 안내 시설 입간판(130cm×100cm ) 설치를 하였다.
전래되는 설화로는 정려문과 연륜을 같이 한다고 하며 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들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있다
참고사항으로는 2000년 표주석 설치하였으며 2002년 속이 텅~비어버리자 충주시에서 보호 하고자 외과 수술과 영양제 시술 실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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