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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대장리 비석군(蘇伊面 大長里 碑石群)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소이면 대장리 비석군(蘇伊面 大長里 碑石群)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6. 28. 08:44


소이면 대장리 대장초등학교 사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들이다

소이면장을 지낸 신천현과 대장리 구장을 지낸 신학철과 효열부경주김씨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 대장리 구장을 지낸 신학철의 구 공적비는 신집효자문 옆에 자리하고 있다. 구비(舊碑)와 신비(新碑)를 같은곳에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다.




소이면 대장리 사거리에 있는 대장리구장을 지낸 신학철의 불망비이다.

신학철은 대장리 구장을 18여년간 탈 없이 잘 수행하였기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세웠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구장의 임무를 맡김에 일의처리는 제법도를 따랐고 옛일을 참작하고 새로운 일을 함에 편벽되게 하지 않았으며

공과 사의일은 중립을 지킴에 모든 주민들이 칭찬하였다.십팔년간 업무를 행함에 시작과 끝이 하나같았다.

1936년 6월에 새긴 비석은 신집효자각옆에 자리하고 있다.현재 비석은 1986년 12월에 새로 만들어 세웠다.


[신유효자문 옆에 자리하고 있는 대장리 구장 신학철의 1936년에 세워진 구비(舊碑)이다]


비의 전면에는 대장리구장신학철근무불망비(大長里區長申學撤澈務不忘碑)라고 음기되여있다.







신천현(申天鉉)은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로서 1920년 신석균(申石均)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소이국민학교와 충청북도 잠업학교를 졸업했다. 1938년 음성군 소이면 근무를 시작으로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음성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1951년 다시 소이면으로 전임(傳任), 1956년 민선 소이면장으로 재직하면서 의욕적으로 지방 행정을 추진,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1960년 민선면장으로 재선(再選)되어 지역 발전에 공헌하다 1961년 퇴임하였다.


이후 사업가로서 어래기업사(御來企業社)를 설립하고 연풍(延豊)과 제천(提川) 등지에서 규석광을 개발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1981년 11월 14일에 61세의 나이로 급사를 하니 주민들이 끝없는 애도로서 신천현(申天鉉)의 타계를 슬퍼하였다.신천현이 남긴 고매한 유덕을 잊지않기 위하여 향민들이 뜻을 모아 송덕의 정을 돌에 새겨 기념하였다. 묘(墓)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 산직 뒷산에 있다.


비의 전면에는 전소이면장소계신천현송덕비(前蘇伊面長素溪申天鉉頌德碑)라고 적혀있다, 비의 관리상태는 양호하다.

비석의 위치는 대장사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대장리는 평산신씨들의 집성촌이였다.

비석은 대장리 주민들에 의하여 1986년 12월 26일 현자리에 세웠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소이면 대장리 대장사거리에 위치하고있다. 이 비는 원래 소이면 금고리 독바우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대장리사거리로 이건하였다.

경주김씨는 어린 12세의 나이에 권씨문중으로 출가하여 시부모를 모심에 있어 일생에 한번도 뜻을 어긴적이 없으며 남편을 섬김에도 부모에게 대하듯 하였다고 한다.또한 종신토록 정절을 지켰으며 이러한 마음씀과 행실이 자손에게도 미쳐 효자와 현손이 대대로 문중을 빛나게 하였다고 한다.


비석의 전면에는 효열부경주김씨송덕비(孝烈婦慶州金氏頌德碑)라고 음기되여 있다 비의 관리상태는 양호하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