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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면 목도리 청덕사(佛頂面 牧渡里 淸德祠)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불정면 목도리 청덕사(佛頂面 牧渡里 淸德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7. 26. 17:26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에 있는 조선 태조의 첫째아들 진안대군과 대군의 장자 봉령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1990년 12월 24일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 진안대군 이방우는 고려 공양왕 때 밀직부사를 지냈으나 부친이 혁명을 일으킬 것을 알고 해주()에 은거하다 죽어 후에 진안대군에 추봉되고 해주 지청사()에 배향되었다. 1831년(순조 31)에 신위를 모셨고 청덕사로 현판을 붙인 것은 대군이 〈유백이지청() 태백지덕()〉이라 한 것에서 근거한다.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청덕사라는 편액이 걸린 솟을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외삼문 안에는 연못과 인도교창립비가 있다. 인도교창립비는 1933년 후손 이태호()가 인도교()를 창립하고 창교를 기념하여 교리를 적어 세운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참배했다 하여 8.15광복 후에 주민들에 의해 일부가 파손되었다

 

 


 


진안대군은 이름은 방우(芳雨). 전주이씨 진안대군파의 시조이다. 태조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고, 부인은 찬성사 지윤(池奫)의 딸이다. 정종과 태종의 동모형이다.                

일찍부터 벼슬에 나아가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역임하였다. 1388년(창왕 즉위년) 11월에서 1389년 3월까지 밀직부사로서 정사(正使)인 밀직사 강회백(姜淮伯)과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어 창왕의 친조를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환하였다.

조선왕조가 개창되자 1392년(태조 1) 8월에 진안군(鎭安君)으로 책봉되고, 함경도 고원의 전답을 녹전(祿田)으로 받았다. 1418년에 진한정효공(辰韓定孝公)에 추증되었다. 아들로는 봉녕부원군(奉寧府院君)복근(福根)과 원윤(元尹) 덕근(德根)이 있다. 시호는 경효(敬孝)이다.




청덕기념관이라 하여 옛모습을 볼수있으며 또한 유교적체험을 할수 있도록 개관하였다.







청덕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첫째 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와 대군의 첫째 아들인 봉령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순조 31년(1831)에 세운 건물로 ‘청덕’이라는 이름은 대군이 청빈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붙인 것이라 한다. 솟을삼문 둘레로는 담장을 두르고 외삼문 안에는 연못을 조성하였다. 건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이방우(?∼1393)는 부친이 혁명의 뜻이 있음을 알고 해주에 은거하다 죽은 인물이다. 사후에 진안대군에 봉해졌다. 괴강의 하류인 불정면에 자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목도강수욕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