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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면 봉황리 전주이씨효열비(中央塔面 鳳凰里 全州李氏孝烈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중앙탑면 봉황리 전주이씨효열비(中央塔面 鳳凰里 全州李氏孝烈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7. 27. 10:48


가금면 봉황리에 있는 전주이씨의 효열비이다.

비의 전면에는 김성배부인전주이씨효열비(金成培夫人全州李氏孝烈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뒷면에는 전주이씨의 행적이 기술되여있다.



전주이씨는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효부이다.


김성배 처 전주이씨는 군수 이삼응의 4녀로 태어나서 14세에 김성배와 혼인하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9년 동안 딸 셋을 낳아 기르다가 남편이 3년간 병석에 있을 때 정성껏 간호했고, 남편이 죽자 같이 죽으려 했으나 사람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5년간 병석에 계실 때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서 마을에서 칭송이 높았다.

양아들 김종규(金鍾奎)를 서울로 유학 보내고 삯바느질로 학비를 조달하여 고등학교를 졸업시켰으나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다. 조카 김복규가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자 할 때 선산의 사초, 시부모 묘의 면봉, 남편 묘의 사초를 정성을 다해 도왔다.


김성배 처 전주이씨의 지극한 효열을 기려 1945년 지역 주민들이 효열비를 세웠고, 1967년 5월 26일 지역 주민이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말 입구에 효열비를 복원하였다. 또한 1967년 7월 1일 충청북도지사로부터 효열 표창이 내려졌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봉황리(鳳凰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


1914년 주변에 있는 봉황산과 봉황내에서 이름을 따 봉황리라는 법정리 명칭이 만들어졌다.


1898년의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보면 가흥면은 상동, 중동, 부도, 장미, 능암, 원동, 형천의 7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능암이 지금 봉황리 지역을 말한다. 그리고 1912년에 나온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총람』에는 가흥면이 형천리, 부도동, 장미리, 상동, 중동, 신대리, 원동, 능암리, 내동, 팔송리의 10개리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능암리와 내동이 나중에 봉황리가 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동과 능암리를 중심으로 팔송리 일부, 복성면 죽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봉황리가 만들어졌고 가금면[현 중앙탑면]에 속하게 되었다.


봉황리는 남한강 남쪽 봉황내를 따라 남북으로 분포되어 있다. 봉황리 서쪽에는 무쇠봉[370.8m]이, 남쪽에는 을궁산[394m]이 있어 서쪽과 남쪽이 높고 동쪽과 북쪽이 낮은 편이다.


2008년 3월 1일 현재 면적은 5.46㎢이며, 총 71세대에 139명(남 72, 여 67)의 주민이 살고 있다. 봉황리는 중앙탑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법정리이다. 그것은 비교적 높은 산 사이로 흐르는 봉황내 양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황내를 따라 상류인 남쪽으로 내동(안골)이 있고 하류인 북쪽으로 능암(능바위)이 있다. 동쪽은 노은면 수룡리, 서쪽은 가흥리, 남쪽은 하구암리, 북쪽은 앙성면 능암리와 접하고 있다.

봉황리는 삼국시대 때 북쪽에서 한강을 따라 올라온 배나 사람이 충주로 들어가는 지름길에 위치했다. 이 길은 봉황내를 따라 잣고개를 넘어 용전리 입석마을로 이어진다. 그러한 루트를 증명하는 문화유산이 봉황리에 있는 마애불과 입석마을에 있는 충주 고구려비이다. 봉황리 안골에는 현재 충주시에서 운영하는 봉황자연휴양림이 있고 보훈처에서 운영하는 보훈휴양원이 있다. 이들 휴양시설은 모두 봉황내를 끼고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국도 38호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