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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면 문산리 김해김씨기념비(金加面 文山里 金海金氏紀念碑) 본문
금가면 문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김해김씨인 김현명과 김광배 김규배의 기념비입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자선사업가 김현명의 공덕을 기리는 비.
참봉 김현명(金顯明)은 동량면 탄동에서 용산골로 이주한 이후 인근 동민들이 극빈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고 남모르게 이들을 도와주어 동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동민들이 빈한한 까닭에 이를 기릴 만한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안 김해김씨 문중에서 필요한 자금을 대고 동민들이 노력 봉사를 하여 김현명 자선비를 건립하였다.
원래의 건립 위치는 현 위치보다 위쪽이었으나, 비행장을 위한 도로 확장 사업으로 도로 교각이 세워진 곳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우회 도로가 건설되면서 2000년경 현 위치로 이전, 관리되고 있다. 김현명 자선비는 목행대교를 건너 남한강을 끼고 충주 김생사지 방향으로 가다가 금가면 방향의 두 번째 도로로 우회전하면 도로 옆의 조그만 공터에 건립되었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대석은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85×50×22㎝의 크기이며, 비신은 화강암으로 45×125×16㎝이고, 지붕돌은 85×59×42㎝이다. 높은 단을 쌓고 그 위에 해당 문중의 비석 3기를 같이 세워놓았다.
비 앞면에는 9×9㎝의 해서체로 ‘참봉김해김공현명자선기념비(參奉金海金公顯明慈善紀念碑)’라 하였고, 비제 양옆으로 2행 4구씩 4×4㎝ 크기의 글을 해서체로 음기하였다. 즉 ‘미재선재존심인자유공시덕휼빈주□수분근검인리감화선공후사입석영송(美材善哉存心仁慈惟公施德恤貧周□守分勤儉隣里感化先公後私立石永頌)’라 하였고, 뒷면에 ‘신사삼월(辛巳三月)’이라 음기하여 건립 연대가 1881년임을 알 수 있다.
두 차례 이전을 하면서 대석 대신 시멘트로 고정을 시켰고, 높은 단(壇)은 자갈을 섞어 쌓은 후 그 위에 김해김씨 문중의 자선비 3기(김현명 자선비, 김광배 자선비, 김규배 자선비)를 올려 놓았다. 후손 김종수에 의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 문곡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자선사업가 김광배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광배는 김해김씨로, 조부가 참봉으로 낙향하여 인근 토지를 거의 장악한 대지주로 성장하자 부친 김현명, 사촌동생 김규배와 나란히 빈민 구제에 힘썼다. 이에 동민들이 특히 인근의 어려운 동민들을 구휼하는 데 앞장선 김광배의 자선비를 세우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안타까워하자 김해김씨 문중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동민들의 이름으로 비를 세웠다.
김광배 자선비는 목행대교를 건너 용교리에서 남한강을 끼고 김생사지 방면으로 가다가 금가면 방향의 두 번째 도로에서 우회전하면 도로 옆에 있다.
비좌개석의 형태이며, 대석 80×54×10㎝의 크기로, 시멘트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비신은 화강암으로 38×119×14㎝이며, 지붕돌도 화강암으로 73×49×25㎝의 크기를 보이고 있다.
비제는 7×6㎝의 해서체로 ‘김광배씨자선시덕비(金光培氏慈善施德碑)’라 음기되었고 본문은 3×4㎝의 해서체로 ‘주제보호사기동정택지방□영세불망(周濟保護思其同情澤治芳□永世不忘)’이라 음기되었다. 뒷면에 ‘갑술 십일월 일(甲戌十一月日)’이라 음기되어 건립 연대가 1934년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김규배의 장남인 김종수가 관리하고 있다.
김규배는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규배는 선친에게 물려받은 토지로 농사를 지으면서 재산을 늘렸다. 1943년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지역의 주민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금가면민의 세금을 전부 대납해 주었다. 해방 이후에는 정치에 투신하여 1952년 4월 25일 실시된 초대 시·읍·면의회선거에서 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1956년 8월 8일에 실시된 제2대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곡리 108번지에 석사김해김공규배자선기념비(碩士金海金公奎培慈善紀念碑)가 세워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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