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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면 법주사 금강문(俗離山面 法住寺 金剛門) 본문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법주사에 있는 금강문이다.
일주문과 수정교를 지나 본격적으로 법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게 되는 건물이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건물 좌우에는 낮은 돌담이 둘러쳐져 있다. 중앙의 어칸은 통로로 쓰이고, 양쪽 어칸에는 1974년에 조성한 금강역사(金剛力士) 2위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모셨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우리 나라에서는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일설에는 이 문수보살이 석가의 교화(敎化)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몸을 바꾸어 보살의 지위에 머물고 있으나, 오랜 옛적에 이미 성불하여 용존상불(龍尊上佛)·대신불(大身佛)·신선불(神仙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또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로 불릴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일설에는, 현재 북방의 상희세계(常喜世界)에 있는 환회장마니보적불이 곧 문수보살로, 이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사중죄(四重罪)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으로, 현재 1만 명의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원도의 오대산을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으로 믿고 신봉한다.
≪화엄경≫ 속에서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양쪽 협시보살(夾侍菩薩:좌우에서 모시는 보살)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이루고 있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다.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이다. 지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곧 마음에 아무런 분별심·차별의식·우열관념 등이 없는 한없는 고요 속의 밝음이다.
이 문수보살에게도 다른 불보살처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십대원(十大願)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고 갖가지 방편으로 불도에 들게 한다. ② 문수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음을 주는 중생이라도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③ 문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④ 문수를 속이거나 업신여기거나 삼보(三寶:불교의 세 가지 보배. 부처, 부처의 가르침, 부처의 제자)를 비방하며 교만한 자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⑤ 문수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⑦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⑧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⑨ 삼보를 비방하고 악업을 일삼는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⑩ 자비희사(慈悲喜捨)와 허공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이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에 문수신앙을 최초로 이식한 이는 자장이며, 이 밖에도 신라의 경흥대덕(憬興大德)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방위신앙을 정립시킨 기록이 있다.
또 경순왕이 문수보살의 화신인 줄 모르고 공양 올리기를 꺼린 설화, 문수보살과 함께 수도했던 고려 고승 3인에 얽힌 설화,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문수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닦는 기도법으로는 문수팔자법(文殊八字法)이 있는데, 이는 천변·일식·월식·병란 등을 피하는 수행법(修行法)이다.
우리 나라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중국의 청량산을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라고 하였는데, 이 청량산에서 수행한 자장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사구게(四句偈)를 받았다. 이어서 한 노승으로부터 범어 게송에 대한 해석을 듣고 부처님의 가사(袈裟)와 발우를 받았으며, 신라에 구층탑을 세워 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을 부탁받았다.
이때 그 노승에게서 우리 나라의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자장은 643년(선덕여왕 12) 귀국하여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여 오대산을 문수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다. 그 뒤 강릉 수다사(水多寺), 태백산 석남원(石南院) 등지에서 문수보살과 관련된 이적들을 남겼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보천은 오대산의 중대가 1만의 문수보살이 머무는 도량임을 강조하여, 이후 향화(香華)가 끊이지 않게 하였다. 특히, 조선 세조가 등창병으로 고생할 때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문수동자의 감응을 받아 병이 낫게 된 뒤부터 문수신앙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으로는 오대산을 비롯하여 춘천시청평사(淸平寺)를 들 수 있으며, 이 밖에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평창시 문수사, 옥천군 문수사, 서산시 문수사, 구미시(선산) 문수사, 고성군 문수암, 울산시(울주) 문수암, 김제시 문수사, 익산시 문수사, 고창군 문수사 등이 있다.
우리 나라의 사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며,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文殊殿)을 따로 두기도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현보살(普賢菩薩)은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 이 보살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협시(脇侍)하는 보살로 유명하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음에 대하여,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또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 또는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형상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나 크게 나누면 흰 코끼리를 탄 모양과 연화대에 앉은 모양의 2종이 있다. 예로부터 이 보살은 코끼리에 탄 형상으로 많이 표현되었고, 연화대에 앉은 모습은 주로 진언밀교(眞言密敎) 계통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화엄경≫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일찍이 비로자나불 밑에서 보살행을 닦았던 보살들의 대표로, 구도자들에게 법계(法界)를 열어 보여주는 사실상의 ≪화엄경≫ 설법사이다.
그는 일찍이 수천 억의 여래에게 봉사하고, 모든 보살도의 구극에 도달하고, 삼매에 의하여 자재력을 얻고 모든 것을 알며, 여래의 비밀처에 통하여 일체의 불법에 대하여 의문을 끊고, 일체여래의 가지(加持)를 받으며, 일체중생의 근기(根機)를 알며, 일체중생의 신해(信解)와 해탈에의 길을 잘 보여주며, 모든 여래의 가계(家系)를 흥성하게 하는 지혜를 가지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해설하는 데 능통하며, 기타 무량한 덕성을 완비하고 있다.
그리고 보현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근거하여 그 가지법(加持法)에 의해서 중생이익의 원을 세워서 수행하는 것을 그 의무로 삼고 있다. 이것을 보현의 행원이라고 하는데, 이를 압축하면 10대원(大願)이 된다.
① 모든 부처님께 예배·공양하고(禮敬諸佛), ② 모든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고(稱讚如來), ③ 모든 부처님을 널리 공양하며(廣修供養), ④ 스스로의 업장을 참회하고(懺悔業障), ⑤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며(隨喜功德), ⑥ 부처님이 설법해 주기를 청하고(請轉法輪), ⑦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기를 청하고(請佛住世),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常隨佛學), ⑨ 항상 중생들에게 순응하며(恒順衆生), ⑩ 두루 모든 것을 가지고 회향하는 것(普皆廻向)이다.
이 10대원은 보현보살의 본원이자 모든 구도자들이 이룩하기 위하여 실천해야 하는 조항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널리 신봉되고 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의 균여(均如)는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특히 ≪보현행원품 普賢行願品≫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포되는 경전 가운데의 하나로서 보현보살을 관하는 중생들에게 보현삼매(普賢三昧)에 몰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보현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관하여 죄장(罪障)을 참회하는 이 삼매는 ≪법화경≫의 유행과 함께 우리 나라의 천태종(天台宗) 등 법화신앙계 종파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보현보살은 관음이나 지장보살처럼 현세이익 또는 내세이익의 측면이 부족하였으므로 신앙으로는 널리 유행하지는 못하였다.
보현보살[普賢菩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금강역사는 대체로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통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금강역사[金剛力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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