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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증약리 찰방신택하영세불망비(郡北面 增若里 察訪申宅夏永世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군북면 증약리 찰방신택하영세불망비(郡北面 增若里 察訪申宅夏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2. 13:07


군북면 증약리 찰방비석군에 있는 찰방 신택하(察訪 申宅夏)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입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신택하는 영조4년(1728년) 율봉역찰방 으로 제수되였다.



비석에는 행찰방신공택하영세불망비(行察訪申公宅夏永世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비석뒷면에 옹정8년(雍正8年.1730년)으로 기록되여있다.


찰방역은 공문서의 전달이나 관리들의 왕래와 숙박 등의 편의를 도모하고 관물과 공물의 수송을 돕기위해 설치된 역을 다스리는  중심지를 이른다.

신라 시대부터 처음  시작된 이 역(驛) 제도는 고려때 군사적인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역의 관할은 병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역전(驛田)이라는 토지를 나누어주었다. 한때 22개 방면에 역도를 두고 547개 역을 두었는데 역도에는 역승을 두었고, 각 역에는 역장을 그 아래는 역리와 역정을 두었다. 조선시대들어 역승을 찰방(察訪)이라 고치고 40개 구역에 찰방을 두어 주변 역을 관리하게 하였는데 찰방이 주재하는 역을 찰방역이라 했던 것이다.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에 있는 증약 찰방역은 전국 40개 중요역 중의 하나로 교통상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이 찰방역은 지금의 증약리, 자모리, 이백리 등의 전 농토를  역둔전으로 지급받아 역을 운영하고  역리가 355명이나 있었고 남여 종복도 500여명에 달할 만큼 큰 규모의 역이었으며 인근 역을 속역으로 다스렸다.